정부의 기름값 안정대책 발표가 예고된 18일 국내 정유업계와 액화석유가스(LPG)업계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유류세 인하 등 정부의 자구책은 없고 업계의 가격인하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왔다"며 속을 태웠다.
특히 올해 1ㆍ4분기 실적발표를 앞둔 정유사들은 '가격인하 압박'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좌불안석이다. 정부의 기름값에 대한 추가 대책 발표로 지난해 초 불거진 기름값 논란이 또다시 재연돼 정유사들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 직후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대책반까지 꾸려가며 정유사들을 전방위로 압박했다. 결국 정유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3개월간 기름값을 리터당 100원씩 인하해 총 8,000억원가량의 손실을 입은 바 있다.
더욱이 이달 말로 예정된 1ㆍ4분기 실적발표에서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ㆍS-OIL 등이 업체당 약 5,000억~8,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점쳐지면서 정유사들은 기름값 인하 압박이 거세지지 않을까 걱정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4월 LPG 공급가격 인상시기를 총선 이후로 미뤘던 LPG업계는 사실상 가격인상은 물 건너갔다며 난감해 하고 있다. SK가스와 E1 등 국내 LPG 수입ㆍ판매업체들은 4월 LPG 공급가격 인상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업체는 최근 각각 매일 수차례의 회의를 통해 가격인상 여부를 논의해왔지만 결국 이달 공급가격을 동결하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국내 LPG업체들은 통상 매월 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가 정한 국제 LPG 가격을 기반으로 환율, 각종 세금, 유통비용 등을 반영해 국내 공급가격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원래 일정대로라면 지난달 말에 4월 공급가격을 결정, 발표했어야 하지만 LPG업계는 정치권과 정부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20일이나 지난 지금까지 가격결정을 미뤄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 대통령이 유가상승의 원인으로 국내 기업들의 '공급과점' 문제를 거론하자 LPG업계는 결국 손실을 무릅쓰고 가격을 동결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해 5월 공급가격을 올렸다가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가격인상을 철회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LPG업계의 한 관계자는 "4ㆍ11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가격을 올리지 못했는데 총선 직후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느 누가 가격인상 얘기를 꺼낼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LPG업계는 사실상 이달 공급가격이 동결됨에 따라 업체당 수백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4월 LPG 공급가격은 3월 국제 기간계약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당 300원가량의 인상요인이 발생했다. 하지만 가격인상분을 고스란히 LPG 수입ㆍ판매사가 떠안으면서 이달 들어 업체당 하루평균 최고 18억~20억원가량의 손실이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월에도 인상요인의 50%만 공급가격에 반영한 바 있는 이들 업체는 누적손실이 업체당 최고 7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는 업계 1위인 SK가스가 지난해 벌어들인 영업이익(1,504억원)의 절반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