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개혁 조세정책이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선심공세에 밀려 초반부터 휘청대고 있다. 여소야대 정치구도와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가 마련한 조세개혁방안이 훼손되거나 변질되리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정치권의 발목잡기가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선심성 감세로 인한 세수부족은 빠듯한 나라살림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결국 재정의 경기조절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김진표 부총리의 내년 예산 3조 증액 발언으로 적자재정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도 더욱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 발목잡힌 조세개혁=정부는 지난 8월 중장기 조세정책방향이 담긴 올해 세제개편안을 마련하면서 비과세ㆍ감면조치를 대거 줄여 세입기반을 확충하는 대신 장기적으로 세율을 인하한다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원칙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회의 세법심사 초반부터 선거논리에 발목이 잡혀 휘청대고 있다. 우선 정부가 세수확보와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역점은 둔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과 서민금융기관 예탁금 비과세 등 2개 조세특례 폐지조치가 국회 재경위 소위심의에서 백지화쪽으로 잠정결론 났다.
정부는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제도의 폐지이유로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계속 깎아줄 경우 설비투자를 하거나 연구개발비를 쏟아 붓는 우량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었다. 정부 대신 중소기업보호를 위해 중소기업 최저한세를 인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농ㆍ수협과 신협ㆍ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에 예탁금에 대한 비과세조치를 폐지하자는 정부안도 선거논리에 의해 훼손됐다. 정부는 당초 서민보다는 도시부유층의 재테크수단으로 악용되고 과세기반을 크게 잠식하기 때문에 비과세 연장이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농ㆍ수협의 경우 농어민 조합원의 예금은 16%에 불과한 실정이다.
법인세율 2%포인트 인하하기로 한 재경위 소위의 합의안(나오연 의원입법)도 선심성 의혹을 지울 수 없다. 2005년 소득 발생분에 대해 2006년에 세율을 2%포인트 인하하는 내용의 개정안이라면 굳이 올해 중 법인세법을 개정하지 않고 내년에 해도 효과는 같기 때문이다.
◇선심성 의원입법 무더기 대기=정부 세제개편안의 훼손도 문제지만 정치권의 선심성 감세요구가 더 심각하다. 현재 국회 재정위에 계류중인 의원발의 세제법안은 50여개. 이들 대부분이 총선표와 직결되는 소득세법ㆍ조세특례제한법 등과 관련된 감세안이다. 중대형 아파트 관리비에 대한 부가세 면제의 경우 정부의 세제개편안에서 포함되지 않았으나 정치권에서 1년 연장을 요구하자 정부가 마지 못해 수용한 적이 있다. 소득세 분야의 선심성 의원발의 감세안도 일부 통과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대표적인 법안으로
▲초ㆍ중ㆍ고등학생 학원비 200만원, 예식료 가족 200만원, 장례비 200만원, 이사비 100만원 한도의 특별공제 신설(한나라당 김정부 의원안)
▲서화ㆍ골동품 양도차익 일시재산소득 비과세(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안) 연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재정적자 악순환 우려 증폭=내년 중 세입예산은 올해보다 6.5%증가한 122조3,446억원. 이는 5.5%의 성장률 달성과 각종 감세조치 폐지를 전제에서 편성한 것이어서 내년 경기가 뚜렷하게 회복되지 않으면 세수목표 달성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감세조치가 경기부양효과는 적으면서도 재정의 건전성을 해치고 결과적으로 재정의 경기조절 역할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가 내년 예산 117조5,000억원을 편성하면서 재정여유가 부족한 탓에 경기부양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예산조차 줄인 바 있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금수입로 예산을 뒷받침하지 못해 국채를 발행하면 시중금리가 뛰어 경기회복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무엇보다도 적자재정을 만회할 중장기적인 재정 청사진이 없는 상황에서 적자재정이 반복되면 성장잠재력 훼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권구찬기자,임석훈기자 sh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