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농협, 혈세 수兆 쏟아붓는데 자금흐름 몰라서야" 돈줄 감독 의지

[농협 회장 제왕적 권력 제동]


무이자 자금 배분기준·결과 공개안해 인사 등도 회장 입김이 결정적 영향
돈 흐름 관리해 비리 차단·투명성 확보 "구조조정 핵심은 은행 지점 통폐합, 수익성 평가 기준 미달땐 없앨 것"
여느 조직이 그렇듯 농협 회장의 '권력'은 인사와 예산에서 나온다. 농협 회장은 중앙회와 22개 계열사에 대한 실질적인 인사권을 행사한다. 농협의 자산은 계열사를 포함해 284조원, 직원 수는 2만2,000여명에 이른다. 국내 1위 대기업인 삼성그룹(자산 230조원)보다 큰 조직을 좌지우지하는 게 농협 회장이다. 중앙회와 계열사에 대한 권력이 인사에서 나온다면 단위 조합에 대한 권력의 원천은 '돈'이다. 그 중심에 세간에서 '통치자금'으로 불리는 '무이자 자금'이 있다. 무이자 자금의 규모는 해마다 다르지만 7조~9조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총액은 8조300만원가량이다. 이 막대한 돈을 따내기 위해 단위 조합장들은 농협 회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이자 자금은 형식적으로 내부에서 '부회장'으로 불리는 전무이사가 집행한다. 전무이사는 '회원조합자금 지원 및 고정투자심의회'라는 내부 위원회의 심의ㆍ의결을 거쳐 자금배분을 결정한다. 하지만 배분기준과 결과가 전혀 공개되지 않아 각종 의혹이 난무했다. 일부에서는 회장 선거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 조합에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지원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농협 측은 "대의원 조합이 일반적으로 다른 조합에 비해 규모가 큰데다 대의원 조합을 통해 다른 조합으로 자금이 지원되기도 한다"고 해명하지만 농협 안팎에서는 회장의 입김이 자금배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일부에서 전무이사실을 대기업의 옛 비서실에 빗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이자 자금을 둘러싼 의혹은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 지적사항이었지만 농협은 자금운용에 대한 공개를 거부해왔다. "농협은 농민들의 자주적 조직이고 배분내역이 공개될 경우 상대적으로 자금지원 규모가 작은 단위 조합이 반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조차 구체적인 운용내역을 알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사정에 변화가 생겼다. 정부가 내년부터 매년 1,5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4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지원되는데 사업 자금운용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게 정부의 논리다. 보조금은 국민의 세금인 만큼 정부는 농협에 사업 구조조정과 관련한 여러 가지 조건을 붙이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수 있다. 이 MOU에 무이자 자금의 운용기준과 배분절차ㆍ배분결과를 모두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게 농식품부의 복안이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세부적인 자금운용에 일일이 간섭할 수는 없지만 운용내역을 공개하도록 하면 무이자 자금을 회장이 좌지우지한다는 의혹이 해소되고 회장의 권력도 자연스럽게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농협 비리가 터질 때마다 농협 회장의 '힘'을 빼기 위한 시도를 여러 차례 해왔다. 민선 1기(한호선), 2기(원철희), 3기(정대근) 회장 등 역대 회장들이 모두 각종 비리의혹에 연루돼 '철창' 신세를 졌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그 배경에 '불투명한 자금운용'이 자리잡고 있다고 판단해 지난 2005년 농협 회장직을 '상근'에서 '비상근 명예직'으로 바꾸고 2009년에는 회장의 대표이사 인사 추천권까지 없앴다. 현재 전무이사를 포함한 각 부문 대표이사에 대한 인사는 '인사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추천하면 대의원회의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겉으로는 회장이 인사에 관여할 여지가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회장이 '위원회'를 통해 사실상의 전권을 행사한다는 게 농업계의 정설이다. 농협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농협을 둘러싼 각종 잡음은 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운영의 문제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정부가 무이자 자금 운용내역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자금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해 이런 운영상의 허점을 없애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농협의 반발이다. "무이자 자금의 배분을 공개하면 자금지원 규모가 작은 단위 조합이 반발해 사업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반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MOU에 농협 은행의 구조조정 방안을 포함시키기로 한 것도 이런 의지의 연장선상이다. 지금까지 방만하게 운영돼온 농협 신용사업에 '메스'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구조조정의 핵심은 농협 은행 지점의 통폐합"이라며 "각 지점의 수익성을 평가해 일정 기준에 미달될 경우 지점을 없애도록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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