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자율 구조조정 실패한 셈… "정부가 주도를"

■ "건설·조선 구조조정 강도 높여라"<br>은행들 충당금 증가·BIS비율 하락등 우려에 칼 못 휘둘러<br>퇴출기업 적을수록 위험 커… "확실한 채찍·당근 제시해야"


정부가 은행권에 건설 및 중소 조선업체에 대한 구조조정 강도를 높이도록 주문함으로써 ‘자율 구조조정의 실패’를 자인했다. 자율 구조조정은 ▦은행들의 충당금 증가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하락에 대한 부담 ▦지난 2007년 결산자료를 바탕으로 한 평가에 대한 적절성 ▦구조조정에 대한 인센티브 미흡 등으로 일찍부터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돼왔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경기민감 업종을 시작으로 여러 업종으로 구조조정이 확산돼야 하는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면서 “정부가 은행권에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신속한 구조조정과 함께 정확하고 효율적인 방침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조조정이 어정쩡한 상태로 끝날 경우 우량 기업도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고 은행들의 부실은 더 커지면서 경제 전체가 몸살을 앓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자율 구조조정은 자살골(?)=은행들은 정부가 자율 구조조정을 강조하면서 칼자루를 쥐어줘도 휘두를 수 없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본부장은 “은행이 거래기업을 퇴출시키는 것은 자신의 생살을 도려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며 “외환위기 때도 은행이 기업에게 퇴출 딱지를 붙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은행이 기업에 퇴출 딱지를 붙이는 순간 은행은 부실의 부메랑을 맞는다. 정상기업인 AㆍB등급과 부실기업인 CㆍD등급은 충당금 부담이 다르지만 C등급과 D등급도 3~6배 이상 차이가 난다. C등급은 회생을 전제로 한 워크아웃 기업이기 때문에 ‘요주의’로 분류돼 대출금의 8%만 쌓으면 된다. 회사가 살아날 경우 충당금은 환입된다. 반면 D등급은 퇴출이기 때문에 담보가 있는 대출은 20%, 무담보는 50%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회사 정리절차에 들어가기 때문에 충당금을 오랫동안 쌓아둬야 하고 충당금이 환입될 가능성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충당금 부담이 100%까지 높아지기도 한다. 결국 기업의 퇴출은 은행의 손실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퇴출 판정이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부담도 크다. 상장사는 지난해 3ㆍ4분기, 비상장사는 2007년 결산보고서를 기준으로 재무제표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리먼브러더스 부도사태 이후 악화된 시장상황이 반영되지 않아 적절한 결정이 불가능하다. 결국 2008년 결산 결과가 나오면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퇴출 기업이 적을수록 위험은 더 늘어=은행들은 눈치를 보면서 CㆍD등급을 BㆍC등급으로 판정해 일단 퇴출을 늦춰보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퇴출을 늦춘 만큼 위험은 더 커지는 만큼 부작용을 더 키운다는 목소리가 높다. 은행이 부실기업을 C등급으로 판정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당장 충당금 부담은 줄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담이 오히려 늘어난다. 워크아웃 기업에 대해 금리를 깎아주고 출자전환을 해줘야 한다. 이자수입이 줄고 부도날 경우 하나도 회수할 수 없게 된다. D등급을 C등급으로 평가하면 퇴출시점이 늦어질 뿐 아니라 옥석 가리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은행들이 살아남은 기업에 대출을 해주지 못하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퇴출을 많이 시켜야 대출해줄 기업 숫자가 줄고 부실대출 가능성도 낮아진다. 은행들은 “조선업체의 경우 C등급이 적은 이유는 수주취소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자는 “조선사들이 맺은 수주계약서상에는 해당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갈 경우 주문을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며 “해외주문이 많은 경우 수주취소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B등급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확실한 채찍과 당근을 제시해야=정부가 자율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지만 은행들 스스로 기업을 퇴출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감독당국이 압박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확실한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은행이 준 만큼 받는 게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정부가 조건 없이 자본확충펀드를 지원하는 등 기업 퇴출로 인해 은행이 짊어져야 할 짐에 대한 안전장치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잃은 것도 문제다. 신뢰를 잃은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BIS비율 13%를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가 한달도 안 돼 10% 이상이면 된다고 한다면 나중에 13%로 다시 올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며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보여줘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구조조정의 첫 단추인 건설사ㆍ조선사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적이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정현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구조조정은 신속성과 함께 명확하고 효율적인 원칙과 방향이 제시돼야 한다”며 “BIS비율을 규제하면서 유동성을 공급하고 구조조정을 확대하라는 등 은행들을 딜레마 상태에 빠지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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