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주고도 이자를 물어야 하는 사상 초유의 현상이 일본에서 일어나게 된 것은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넘쳐 나는 유동성, 외국계 은행들의 엔화에 대한 불신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콜금리가 `제로`에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일부 외국계 은행 지점들이 내부적으로 정해 놓은 한도를 넘겨 엔화를 보유하게 되자 대출 이자를 지급하는 손해를 무릅쓰고 이를 다른 외국계 은행에 빌려주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장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 금융완화정책을 펴 엄청난 돈을 풀었지만 경제는 꿈쩍도 않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는 이처럼 `백약무효`의 일본경제를 상징하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기형적인 일본금융시장=지난 25일 일본의 하루짜리 콜금리(평균)가 –0.01%를 기록하게 된 것은 이전까지 콜금리가 거의 `제로`수준에 접근해 있던 상황에서 일부 외국은행 지점들이 마이너스 금리의 콜거래(은행간 초단기 자금거래)를 함으로써 발생한 현상이다. 마이너스금리로 거래된 자금은 200억엔. 일본의 은행들은 최근 정상적인 해외차입이 안되고 있다. 부실채권이 많아 신용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국내시장에서 외국은행 지점들로부터 엔-달러스와프를 통해 빌리는 게 훨씬 싸다. 다시 말해 엔화를 주고 달러화를 교환하는 것이다. 물론 스와프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거래가 빈발하다 보니 한 외국은행 지점이 과도하게 엔화를 보유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외국은행들은 엔화를 많이 보유하면 엔화가치가 떨어질 경우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한도를 정해놓고 있다. 결국 이 한도를 넘기게 된 한 외국계 은행지점이 아직 한도를 남겨두고 있는 다른 외국계은행지점에 200억엔규모의 엔화를 떠 넘긴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콜론(콜자금 대출)이지만, 실상은 과도하게 보유한 엔화를 비용(마이너스 대출금리)을 지불하고 처분한 셈이다. 물론 스와프 거래를 통해 이미 마이너스 금리 이상의 수익을 거뒀기 때문에 실제로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
◇일본경제의 현주소를 반영한 것=일시적으로 벌어진 현상이긴 하지만 그 배경에는 극도로 활력을 잃은 일본 경제의 단면이 드러나 있다. 우선 유동성이 넘쳐나는데도 소비와 자금수요는 죽어있어 금리가 최저수준까지 내려와 있고,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일본의 대형 은행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정상적으로 돈을 빌리지 못할 정도로 불신을 사고 있다는 점이 `마이너스 콜금리`를 빚어낸 것이다. 여기에 외국은행들이 일본의 통화가치를 믿지 못해 엔화 보유를 꺼린다는 점도 작용했다.
적자재정과 금융완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의 실패, 국내 소비자들과 해외 투자자들의 불신이 겹쳐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10여년동안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바뀌면서 돈을 푸는 정책에 더 열을 올리고 있지만 현재까지 효과는 거의 없다.
당분간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따라서 `마이너스 금리`도 간헐적으로 재연될 수 있는 일종의 `일본 증후군`의 하나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마이너스 금리로 인한 시장메커니즘 왜곡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콜금리가 이처럼 왜곡돼 움직일 경우, 일본 중앙은행은 이러한 콜금리를 더 이상 금리정책의 지표로 사용하기 어렵게 된다. 통화정책의 중요한 수단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유력지인 요미우리신문도 26일 “마이너스금리현상은 통화팽창정책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경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화용,최윤석기자 yoep@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