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정책제안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한 백화점이 정문에 설치한 `대통령에게 바라는 글` 게시판에는 고객들이 적은 온갖 희망사항이 열거돼 있다. 물러날 때 박수 받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는 조언도 있고 부자 되게 해달라는 애교 넘친 글도 있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정책집행은 신중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 정치인 가운데 열성적인 지지자가 가장 많은 노 당선자가 인기에 연연하는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충고다.
이와 관련해 금융권에서는 260만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해 `깜짝 쇼`식 정책이 나오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과거 신용불량 기록을 삭제하고 신용불량 명단에서 제외하는 신용사면은 절대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김대중대통령 취임 이후 두 차례의 신용사면 조치가 있었다.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과거 연체기록을 삭제하고 신용불량 명단 자체를 없앴다. 그러나 불과 1년반만에 신용불량자수는 사상 최대로 늘어났다. 잇따른 사면 조치가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 셈이다.
신용카드업계는 최근 연체율이 10%대로 급증, 대다수 회사가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연체율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카드사들 스스로 카드를 남발한 잘못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5월 신용기록 자체를 삭제토록 지시한 정부 역시 일부 고의ㆍ상습연체자에게 신용카드를 안겨준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신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다양한 채널을 통한 교육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최근 거론되고 있는 소비자도산제도나 이미 실시중인 개인워크아웃 등을 통해 신용불량자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재기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데서 끝나야 한다. 선물꾸러미 안기듯 일괄적인 신용사면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부실을 방조하고 키우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김호정기자(생활산업부) gadget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