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道경영으로 30여년 가구산업 종사한 ‘뚝심’ 경영인 시종일관 과묵하게 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달변가로 돌변했다. 31년 전 회사를 차렸을 때 맨 처음 만든 가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경수(58) 에몬스가구 회장은 급기야 흰종이 한 장을 꺼내 들더니 그림까지 그려가며 달뜬 표정으로 잊을 수 없는 그의 ‘백색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볼펜을 쥔 그의 손은 마디마디 두툼하고 거칠다. 반평생 이상 나무와 씨름해온 투박한 손이다. “30년 전만 해도 가구는 자개장이나 서민들이 이사할 때 들고 다니기 편한 비키니장이 일반적이었죠. 그래서 주니어가구처럼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저렴하고 실용적인 가구를 착안했지요.”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그의 첫 가구는 다섯자(약 1.5m) 너비의 ‘아이보리 백색장’이었다. 영등포에 차린 허름한 공장에서 가내 수공업식으로 만든 제품이었지만 비닐로 만들어 지퍼로 여닫는 허술한 ‘비키니장’이나 묵직하고 값비싼 자개장의 틈새를 노린 그의 백색장은 점차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시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창업 직후 하루 20~30개가량 팔리던 한 조 5만원짜리 백색장이 1980년대 초반 들어서는 200개가량 판매됐다고 한다. 중소 가구업체에서 나와 27세의 젊은 나이에 총 직원 7명으로 차린 에몬스가구의 전신 ‘목화가구’는 무수히 많던 영세 가구업체들 사이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직접 디자인해서 손수 만든 가구가 사람들의 집안에 자리를 잡는 모습을 지켜보는 성취감과 가구 제조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로부터 3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김 회장을 가구업계에 몸 담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한때 자재비가 없어서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빌린 돈으로 자재비를 대기도 했다는 그의 회사는 지난 31년 사이 목화가구에서 에몬스가구로 사명을 바꾸고 올해 매출 1,000억원을 바라보는 중견 가구업체로 성장했다. 경기침체와 건설시장 급랭으로 지난해 성장세가 둔화되기는 했지만 지난 2006년 이후 매출증가율이 연 평균 25%를 넘어설 정도로 가구업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고성장 기업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사업을 하다 보면 파도에 휩쓸려 어려울 때도 있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회사를 꾸려오다 보니 어느덧 지난해 3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며 “하고 싶은 일이기에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가구 디자인에 보이는 그의 열의는 에몬스가구 성공의 열쇠가 됐다. 김 회장은 “창업 당시 3,000여개에 달하는 영세 중소기업들이 난무하던 와중에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품질은 물론이고 소비자들에게 잘 팔리는 디자인에 집중했던 점”이라며 “가구사업에 뛰어든 것도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가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3년 이후 2년여 동안 겪었던 경영난도 그에게는 회사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매너리즘에 빠져 가구업계의 트렌드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적자 경영에 빠졌던 당시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며 “고민에 짓눌리던 시절 답답한 마음에 혼자 설악산을 찾은 적도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값싼 중국산 유입에 따른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디자인 능력까지 떨어지면서 판매가 악화된 결과였다. 결국 ‘이대로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독한 마음으로 김 회장은 대대적인 경영혁신에 나서기 시작했다. 임원진을 대거 교체하고 전직원에 대한 의식개혁운동을 전개했다. 판매망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과 디자인 강화에도 나섰다. 가격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죽과 대리석 등 고급 원자재는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가공해 도입하는 방안도 도입했다. 친환경 소재를 도입해 제품력 혁신에 나선 것도 이 무렵이었다. 수년째 혼수가구 시장에서 3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며 돌풍을 일으키는 데는 당시의 뼈 아픈 구조조정이 있기에 가능한 성과다. 지금도 김 회장은 소비자 취향에 맞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품을 팔고 신제품 디자인에도 직접 관여한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강화유리를 사용한 혼수가구 디자인과 수납기능을 강화하는 아이디어 등은 모두 김 회장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백화점이나 전시장을 둘러보며 판매직원들의 소비자 상담 내용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김 회장이 결코 거르지 않는 일과다. 그리고 이 같은 김 회장의 노력은 지난 10년 연속 우수디자인 GD마크 획득, 2009년 GD 한국디자인진흥원상, 2008년 GD 조달청장상 수상 등 에몬스가구의 화려한 수상 경력과 가파른 매출 증가로 고스란히 이어져왔다. 에몬스가구는 지난해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오는 2020년에 매출 5,000억원을 이루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김 회장의 경영 근간은 단순한 외형 확장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가구쟁이’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이다. 김 회장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제품이 집집마다 들어가 주거문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야말로 가구업계에 종사하는 매력”이라며 “국내에서 제대로 된 가구를 직접 만들어 파는 몇 안 되는 회사로서 앞으로도 정도(正道)경영을 실천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