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한국 금융위기 안전지대 아니다

세계경제 하나의 망처럼 연결 출구전략 따른 신흥국 위기<br>한국에도 타격 줄 수 있어 기존 이론 벗어난 분석 필요


지난 6월 벤 버냉키 미국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한 후 인도ㆍ브라질ㆍ터키ㆍ남아공ㆍ인도네시아 등 신흥국들의 환율과 증시가 폭락하는 등 위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공식처럼 통했던 경제 원리들과 모순되는 지표와 현상들이 나오면서 일부 연준 위원들이나 경제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양적완화 축소 발언이 나오기 이전 미국 금리가 떨어져도 달러 가치는 더 오른 게 단적인 사례다. 또 천문학적 규모의 통화완화에도 일부 학자나 연준 위원들이 우려했던 인플레이션 부작용은 아직 미미하고 경제회복 속도도 예상보다 느리게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1990년 이후 급속화된 금융기관의 대형화, 세계화, 정보기술(IT)의 혁신에 힘입어 금융시장과 상품이 완전히 글로벌화돼 있는 탓이다. 세계경제 역시 하나의 망처럼 연계돼 있다.

일례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불씨는 1~2년 후 유로존(유로화사용 17개국) 위기로 넘어갔고 유로존 경기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자 그 불씨가 신훙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마치 폭탄 돌리기식으로 어디가 종착역이 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월가의 많은 투자자들과 미국인들을 경제적 고통에 빠지게 했지만 미국 경제는 지금 통화완화 정책에 힘입어 간신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화폐통합으로 생긴 유로존 위기는 태생적 한계가 원인이어서 개별 체력이 약한 유럽 국가들은 회복이 어려워 보인다.


또한 연준이 미국 경제를 살리려 인플레 위험을 무릅쓰고 제로금리와 통화완화 정책을 폈지만 정작 자금이 풀린 데는 성장률이 더 높고 금융 리스크 부담이 적은 신흥국이었다. 이처럼 통화 정책이 실물금융에 미치는 효과는 정책 목적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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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연준은 빠르면 이달, 늦어도 올해 안에는 출구전략에 나서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인플레 문제가 시급하지 않은데도 실물경제의 현실과 괴리가 있는 일부 연준 위원이나 경제학자들은 평생 접해온 경제 공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많이 불편해 한다. 또한 일부 연준 위원들은 연준의 의무가 미국 경제의 국내 인플레 방어와 고용증대로 국한하는 제한적 시각을 가지고 있어 다른 신흥국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한국은 최근 인도ㆍ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과 달리 안정적이지만 연준의 새 의장이 누가 되느냐, 연준이 향후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사실 한국은 과거 2~3년 동안 다른 신흥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성장 한계, 기업의 과잉 설비, 가계부채 등 구조적 문제점들이 외국투자가들에게 부각되면서 증시도 답보 상태였고 해외자금도 지난해 가을 이후부터 7월까지 꾸준히 유출됐다. 지금까지는 이런 것들이 새옹지마가 돼 다른 신흥국보다 충격을 덜 받은 것이다.

신흥국 중 어느 나라가 실제 위기에 몰릴지는 각 나라별의 대응 능력에 달려 있다. 지금의 인도 경제 틀을 만들어 인기를 얻은 만모한 싱 총리도 한계를 느끼고 최근 미국 경제와 금융에 해박한 라구람 라잔을 인도 중앙은행(RBI) 총재에 임명해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이처럼 나라별 대응방법에 따라 신흥국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로, 어디까지 전염될까가 결정될 것이다. 신흥국 위기가 더 심화되면 수출이 많이 줄어들면서 한국에도 많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국의 경제관료들도 미국 금융위기 회복 과정에서 보았듯이 과거 20~30년 동안 공식적으로 여겼던 방식들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과거 경제 프레임에서 벗어나 세계경제와 금융을 분석하며 한국 경제의 정책들을 입안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생리와 원리를 잘 알지 못하고 기존 경제이론만으로 접근했다가는 원하는 경제 효과를 적절히 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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