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부품까지 검증 까다로운 기준에 "관세혜택 포기하고 싶어"

■ 대기업도 당한 원산지검증

국가·업종마다 절차 제각각… 검증 핑계로 수출장벽 높여

과세당국 검증 지원한다지만 전담부서 없고 세원 노출 우려

중기 사전확인제 활용도 외면



"챙겨야 할 서류는 백 개가 넘는데다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예 포기했습니다."(수출업체 관계자)

"각국이 검증을 강화하는 추세지만 수출업체는 세원이 노출될까봐 도움을 꺼리고 있어요."(관세당국 관계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웬만한 수출상품의 관세는 0%다.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 수출상품은 경쟁력이 붙는다. 우리나라는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와 FTA를 체결했다. FTA를 잘만 활용하면 수출은 더욱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수출기업들이 원산지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크게 2가지 이유다. 원산지검증 과정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괜히 검증서류를 준비했다가 되레 과징금 등만 부과 받을 수 있어 아예 포기하는 사례다. 대기업조차 까다로운 원산지검증에 대응하지 못해 관세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중소기업들은 언감생심인 것이다. 일부는 과세당국에 세원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우리나라 관세당국의 도움을 외면하기도 한다.

관세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FTA 체결 국가들이 원산지검증을 더욱 까다롭게 보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국내 기업들도 관세청 등이 준비한 각종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해 혜택을 보는 게 현명한 경영"이라고 말했다.

◇원산지검증 핑계로 장벽 높이는 각국들=우리나라가 FTA를 맺은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EU, 아세안 등에서 국내 수출업체가 낮은 관세혜택을 보려면 수출 후 원산지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원산지검증은 주로 대기업인 수출업체는 물론 이들 업체에 부품 등을 납품한 하청업체도 받아야 한다. 미국은 현지 관세당국이 직접 서류나 방문으로 원산지검증을 실시하며 EU 등은 국내 관세청 등에 원산지검증을 의뢰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국내 기업이 원산지검증에서 탈락해 관세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FTA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산지검증에서 낙마하면 해외 수입업체는 관세혜택을 취소 받는다. 최악의 경우 계약을 끊어버리는 사태도 발생한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관세혜택을 포기하고 그냥 수출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각국은 원산지검증을 강화하는 추세다. 정부 관계자는 "EU나 아세안 등에서 국내 관세청에 원산지검증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었다"면서 "직접 검증을 하는 미국은 매우 엄격하다"고 말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해외 관세당국의 원산지검증 요청은 2009년 7건에서 2013년 330건으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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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별·업종별 다른 기준…서류 미비로 인정 못 받아=원산지검증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나라별로 혹은 업종별로 기준이 다르기 때문. 정부 관계자는 "FTA 협정문에는 포괄적인 원칙만 나와 있고 실제 수출할 때 원산지검증 절차와 기준은 사례별로 다르다"고 전했다.

원산지검증에서 탈락한 사례를 보면 국내산이 맞는데도 서류상 오류가 많다. A수출업체는 관세당국이 발급해 유효한 원산지증명서를 보냈지만 제3국 소재 중개인이 자신의 명의로 다시 발행하면서 관세혜택이 취소됐다. 플라스틱 고무업종의 B대기업은 협정타결을 확신하고 원산지증명서를 그전에 발급했다가 실제 발효일 이후에는 재발급하지 않아 관세감면을 받지 못했다. 전기전자의 C대기업은 중국산 부품을 국산인 줄 알고 신고했다가 관세당국에 적발됐다.

제조시설 없이 물품을 공급 받아 수출하는 중소기업들은 원산지 증빙서류를 보관하지 않다가 국산임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아울러 국내산에 중국산 부품 등 외국산이 포함돼도 국산임을 인정받는 역내부가가치기준(RVC) 계산을 잘못해 검증 위반이 된 기업도 즐비하다.

◇과세당국 지원 꺼리는 수출업체=관세청 등 정부는 국내 수출기업의 원산지검증을 지원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지만 업계는 쉽게 문턱을 넘어오지 않는다. 세원노출을 꺼리는 게 주요 원인으로 관세당국은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관세청은 지난 3일부터 수출업체가 발급하는 원산지증명서뿐만 아니라 하청업체가 발급하는 원산지확인서도 사전확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검증 받기 전에 관세청에서 검증통과 여부를 판단해주는 것이다. 또 기업실무자를 대상으로 매주 무료교육과 최고경영자(CEO)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CEO 보고서를 발송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활용도는 낮다. 사전확인제도는 원가자료 등을 제출해야 하지만 수출업체는 세원노출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관세청 관계자는 "수출업체의 인식이 높지 않아 원산지검증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고 CEO의 관심도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미국 관세당국처럼 수입 국가가 직접 검증할 경우 업계가 이를 국내 관세당국에 알리는 것도 두려워하고 있어 이에 대한 지원도 어렵다. 수출업체 관계자는 "관세청 측에서 세원파악 활용자료로 쓰면 징계 받는다고까지 말하지만 중소기업청처럼 기업지원 부처가 아니라서 아직은 자료를 제출하기 꺼려진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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