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금본위제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150여년에 걸친 국제통화체제의 역사를 정리했다. 국제 금융의 권위자인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통화체제의 변화를 단순히 경제적 요인에 한정하지 않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국제통화체제라는 네트워크가 국가간 협상을 통해 탄생한다기보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 및 사회 체제 속에서 구축된 역사적 산물이라는 설명이다. 현대경제의 위대한 통화 사건의 하나라고 평가받는 금본위제 역시 영국이 1717년 우연히 금본위제를 채택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산업혁명을 겪은 영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자 각국이 너도나도 금본위제를 채택하면서 국제통화체제로 자리잡게 된다. "국제통화체제는 이론가들에 의해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과 위기를 넘어 끝없이 진화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 사례다. 저자는 결국 국제통화체제에 관한 국가들의 결정도 사실상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국제통화체제를 개혁할 때는 국제협력이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1870년대, 1920년대, 1970년대 국제통화회의가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국제 자본의 이동성 추세는 되돌릴 수 없으며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의 흐름이란 게 기술의 발전과 정치적 민주주의로 인해 촉진되며 이 같은 기술발전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세계적 추세가 뒤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제 자본 이동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21세기 국제통화체제는 어떻게 진화될까. 저자는 달러, 유로, 위안화로 구성된 다국통화체제로 안착할 것으로 예측한다. "달러는 서반구에서, 유로는 유럽에서, 위안화는 아시아에서 지배적 통화 역할을 하는 3극의 국제 통화 체제가 부상할 것이며 이 3대 지역 경제권의 주요 통화는 서로에 대해 더욱 자유롭게 변동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 미국ㆍ유럽ㆍ중국 3국과 강한 경제ㆍ금융 유대를 맺고 있는 작은 나라는 달러나 유로, 위안화 중 어느 하나와 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한국은행의 자문위원인 저자는 한국의 통화 정책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그는 미래의 얘기라는 전제를 달고 "한국의 경우 해외 외환 시장에 개입하는 때가 오면 단순히 달러 시장, 유로 시장 또는 위안화 시장이 아니라 세 시장 모두에 개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의 경제 중심이 중국 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원-위안화 환율은 한국 정책 결정자의 계산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1996년 미국에서 초판이 출간됐고 이번에 나온 한국어판은 2008년에 나온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논쟁 부분이 다소 미흡하지만 국제 통화 체제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