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에너지협력기구 창설과 러시아와의 유대 강화, 중동 지역과 우호관계 지속…. 전문가들이 제시한 국제 에너지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천적 전략이다. 미국 중심의 군사ㆍ정치적인 기존 동맹에 안주할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의 확보와 안정적 공급은 비단 경제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생존전략의 문제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석유 등 에너지 확보와 안정적 공급문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모두 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서는 의견이 갈리고 인식도 치열하지 않다.
이는 북한의 현존 위협이라는 특이한 분단상황 때문이다. 경제중심적 국가전략이 노골화하는 국제사회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아직 냉전적 사고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국가안보를 논함에 있어 군사적 위협이 여전히 경제 분야에 비해 상위의 가치로 인식된다. 석유도 국가안보 차원이 아닌 에너지 문제로 한정해 바라보고 있다.
석유문제가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뤄지려면 정부 부처간 대단히 유기적인 정보공유와 공동대응이 요구된다. 더 나아가 국내 의사결정구조를 담당할 전담부서나 기구를 신설하고 해외동맹을 재편하며 다양한 무력수단의 보유 필요성까지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석유를 보는 관점에는 ‘전략물자’와 ‘시장상품’ 두 가지가 있다. 9ㆍ11테러 이후 에너지 세계는 ‘정치화’의 물결이 거세지고 국제석유시장의 불안정성도 심화되고 있다. 주요 에너지 소비국들은 경쟁적으로 에너지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특히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석유시장에 의존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에너지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석유를 전략물자로 간주하는 게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얘기다.
우리의 국가에너지 전략은 다음 사항이 고려돼야 한다. 첫째, 에너지의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 중동 의존에서 탈피, 러시아와 카스피해 지역을 주목해야 한다. 둘째로는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 및 갈등관계를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포괄적 협력체제의 확립이 필요하다. 동북아시아판 국제에너지기구(가칭 NEAEA)의 창설도 고려해볼 만하다. 셋째, 에너지 안보개념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에너지 공급, 합리적인 가격확보,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리스크 회피 등의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 안보개념을 위해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문배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석유소비는 당분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동 지역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질 것이다. 중동 산유국들 역시 아시아 지역으로의 수출비중이 점점 커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2002년 중동원유 수출의 약 62%가 아시아로 왔다.
따라서 양 지역 사이에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과 판로를 보장함으로써 서로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석유교역뿐 아니라 정치ㆍ경제적 안정까지 도모할 필요가 있다. 중동 산유국과의 양자협력, 아시아 주변국가들과의 다자협력을 통한 에너지안보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