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자산가도 대부분 해당 안돼
복지부, 고소득 직장가입자 건보료 더 걷는다는데…근로소득 제외 年 종합소득 7,200만원 이상 대상임대료 등 수입서 필요경비 빼면 상당수 기준 미달직장인들이 들으면 정말 화날 소식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서울 강동구에 50억원대의 상가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이모(48)씨는 월 임대료로만 2,000만원의 수익을 올리지만 납부하는 건강보험료는 월 5만6,000원에 불과하다. 건보료가 이처럼 적은 것은 그가 월 200만원의 임금을 받는 회사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고소득 직장가입자에게 건보료를 더 내도록 제도를 바꿨지만 이씨의 건보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르지 않는다. 건보료를 더 내는 기준이 연간 종합소득 7,200만원 이상인데 임대료 수입액에서 대출이자ㆍ인건비ㆍ건물감가상각비 등 필요경비를 제외하고 나면 이씨의 연간 종합소득은 5,000만원으로 떨어진다.
한 세무사는 "꽤 높은 비율로 필요 경비가 공제되기에 웬만한 자산가가 아니고서야 부동산 임대수익만으로 연 7,200만원 이상의 종합소득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9월부터 근로소득을 뺀 연간 종합소득이 7,200만원(월 600만원)을 넘는 직장인들은 월 평균 51만원의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발표하고 8~20일 입법예고했다. 별다른 외부 소득이 없는 직장근로자와 금융ㆍ연금ㆍ임대수익 등 기타소득이 많은 직장가입자 간의 납입 보험료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적용되는 소득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수십억원대의 자산가도 여전히 추가 건보료를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근로소득은 모두 제외하고 부동산임대소득, 사업소득, 이자ㆍ배당소득, 연금소득만을 가지고 종합소득을 계산하고 있다.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이미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합산해 종합소득을 계산할 수는 없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이 중 부동산임대소득과 사업소득의 경우 보유 자산의 가치 등을 전혀 계산에 넣지 않고 종합소득만을 기준으로 적용했기에 실제 고소득을 올리는 직장가입자를 잡아내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세무사는 "고용직원의 인건비ㆍ식대ㆍ차량유지비ㆍ건물수선비 등 기타 잡비 등의 필요경비 대부분이 국세청에서도 인정받아 공제되고 있다"며 "30억~40억원대의 자산가 정도는 아마 이번 건보료 추가 납입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자ㆍ배당소득 등 금융소득과 연금소득에 대한 기준도 비현실적으로 높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식ㆍ펀드의 배당소득이나 예금자산의 이자소득만으로 연간 종합소득 7,200만원을 넘으려면 현재 이자율 등을 고려할 때 금융자산만 최소 15억원 이상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실제 복지부에 따르면 직장소득 외 별도의 종합소득이 있는 전체 직장가입자 153만명의 2% 수준인 3만7,000명만이 이번 개정안의 적용 대상이다.
보건복지부 측은 "사회적으로 반향이 클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는 만큼 우선은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부과기준 소득은 향후 가입자 수용성 및 건강보험 재정 사항 등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현실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복지부는 개정안을 통해 납부기한이 2년 경과하고 체납액 1,000만원이 넘는 건보료 고액 상습 체납자의 인적사항도 9월부터 공개하기로 했다. 다만 체납 보험료 납부에 대한 의지, 공개의 실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험료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