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가장 우스운 점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모순이죠.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다가도, 막상 어른이 돼서는 잃어버린 유년을 그리워해요. 돈을 버느라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가도, 훗날 건강을 되찾는 데 전 재산을 투자합니다. 미래에 골몰하느라 현재를 소홀히 하다가, 결국에는 현재도 미래도 놓쳐버리고요. 영원히 죽지 않을 듯 살다가 살아보지도 못한 것처럼 죽어가죠."
파울루 코엘류의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찾은 글이다. 짧은 글이지만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 공감하며 몇 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보험은 현재의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상품이 아니다. 구입 즉시 사용하며 만족을 느끼는 재화도 아니요, 은행 저축처럼 통장에 자산이 꼬박꼬박 쌓여가는 재미를 느낄 수도 없고, 이자가 늘어가는 것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참 재미없는 금융상품이다.
게다가 종신보험은 내가 죽은 뒤에나 가족들이 찾아 쓸 수 있는 돈을 위해 보험료를 내는 것이고, 연금보험은 수십년 뒤에나 만져볼 수 있는 돈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코엘류의 글을 통해 그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의 이유를 찾았다면 과연 억지일까.
사람이 냉정하게 합리적 선택만을 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성향만 가지고 있다면 보험이라는 제도는 존립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항상 눈앞에 보이는 효용만을 위해 선택하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 부여한 가치에 따라 결정하는 존재다. 결국 보험이라는 제도는 만약에 발생할 지 모르는 위험을 마주했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계획된 준비가 필요하다는 공감 아래 '마음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기대'라는 가치를 구입하는 것이 아닐까.
생명보험은 미래에 대한 계획이며 가정의 안전장치로서 현재의 가치뿐만 아니라, 미래의 가치까지 보전하기 위해 준비하는 금융상품이다. 그게 원칙이며 존재 이유다.
그런데 최근 저금리로 수익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짐에 따라 생명보험 상품이 단기간에 수익을 내야 하는 투자형 상품과 비교되고, 이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하는 등 생명보험의 환경과 속성이 다소 변화하고 있다.
보험상품은 단기에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상품이 절대 아니다. 보험은 부자가 되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위험을 만나도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안정적인 생활과 재기가 가능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다. 모든 보험인들은 고객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한다. 고객이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계획의 완성을 돕는 것, 그것이 보험인의 존재 이유임을 파울루 코엘류의 글을 통해 투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