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다시 보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1> 흠결 드러난 지주사 체제, 무엇이 문제인가

금융지주 바꿀 수 없는 흐름… '위인설관' 없애고 싱크탱크 돼야

복합금융 수요 커지며 은행 경영만으론 한계

제도 아닌 사람이 문제… 개선 의지가 핵심 열쇠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이 지난 1월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긴급모임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KB사태 이후 금융지배구조 개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신 위원장이 최근 KB사태와 관련, 관계장관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연합뉴스


금융 당국의 중징계를 받고 이사회에서 해임된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징계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업무에 대한 강압적 개입 논란 등에 "협의도 하지 말라고 하면 회장이 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지주 회장이 어느 선까지 자회사 업무에 개입할 수 있느냐는 'KB사태'를 둘러싼 논란의 큰 축이었다. 실제로 인사개입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때 금융계에서는 이 부분이 징계의 사유가 되는지 논란이 있었다. 이른바 '회장님 가라사대'라는 암묵적 지시로 시작되는 일들은 다른 금융지주에서도 비일비재하기 때문. 여전히 국내 금융지주에서는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고 시스템이 아닌 구두로 집행되는 일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KB사태를 계기로 지주회사 무용론 등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국도 제도 수술작업에 본격 착수한 상황이다.

하지만 기왕에 지주회사 체제가 출범한 이상, 제도 개편의 본질은 지주 회장과 자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역할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지주 회장이 적정선을 지키고 시스템을 통해 회사를 경영한다면 현 제도 아래서도 금융지주는 충분히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지주 체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10월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이후 금융회사의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 급속도로 이어져왔다. 사실상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지주회사 전환이 이뤄졌기 때문에 일부 금융지주의 경우 지주회사 체제가 과연 필요하냐는 논란이 불거지는 것도 사실이다. 2010년 신한사태와 올해 KB사태 등으로 금융지주 수뇌부의 권력투쟁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것도 지주회사 무용론에 힘을 싣게 했다.


매년 수백억원의 인건비를 쓰는 금융지주회사가 그룹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 경영에 개입하는 것 말고 하는 일이 대체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전직 금융 당국 수장은 "KB는 애당초 지주회사 체제가 필요 없었던 곳이고 당국도 (설립을) 반대했다"며 "힘 있는 사람들이 '위인설관'식으로 지주 조직을 만들고 낙하산으로 내려오면서 거대 금융사를 망가뜨렸다"고 꼬집기도 했다.

관련기사



하지만 현시점에서 보면 금융지주 체제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돼가고 있다. KB만 해도 소매금융 전문인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했는데 지주회사 체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LIG손해보험을 인수할 경우 '은행+보험' 시너지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는 불가피한 것으로 평가된다. KB와 비슷한 체제로 평가 받던 농협금융도 최근에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를 통해 자산 기준으로 비은행 비중이 33%까지 올라갔다. 무엇보다 복합금융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저금리로 먹거리가 사라진 상황에서 더 이상 은행 중심의 경영 체제만으로는 금융회사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금융 당국도 최근 복합점포 활성화 대책 등을 통해 사실상 금융지주 체제에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고 있다.

◇위인설관식 자리 챙기기 없애야=문제는 거대한 금융지주의 컨트롤타워가 도덕성과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금융회사는 다른 기업과 달리 주주와 채권자라는 지배구조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CEO에게 보다 높은 역량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금융지주 CEO들은 그동안 자신의 CEO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단기에 자산을 키우고 경기후퇴기에 부메랑을 맞는 무책임한 행태를 반복해왔다. 힘 있는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들고 나눠먹기식 인사가 됐던 게 사실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감독 당국의 징계를 피하기 위해 전결권을 자신이 직접 쥐지 않고 구두개입을 통해 회사를 지배하는 것도 금융지주 CEO들의 오랜 관행이다. '회장님의 뜻'이라는 모호한 지시로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행태는 이번 사태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정관상으로 의사결정의 실질적 권한을 쥐고 있다는 이사회는 이 과정에서 건설적인 개입을 하지 못하고 방관자로 전락해 있었다. 당국 역시 그동안 금융지주회사의 고질적인 지배구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지배구조에 대한 모범규준을 수차례 개정하는 일만 반복해왔다. 금융회사 전직 CEO는 "정치권 개입으로 CEO가 정해지고 정권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회장의 권력구도가 정해지는 구조, 그와의 연줄에 따라 핵심 포스트가 정해지는 상황에서 지배구조 문제는 금융사나 당국 모두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의 한 전직 수장은 "결국 금융지주와 감독 당국 수뇌부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느냐가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제도라기보다는 사람과 의지라는 것이다.

◇후계 프로그램 구축이 결국 지배구조 개선의 시작=금융 당국은 지난해 6월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안'을 만들며 금융지주에서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하고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외이사들에 대한 평가 체계를 구체화하기로 했다. 핵심은 지주 회장의 권한행사 방식을 투명화하는 것이다. 금융계 전문가들은 제도적으로 보면 당국이 마련하고 있는 모범규준에서 더 이상 손볼 것은 많지 않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앞으로 관건은 결국 운용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개선은 각 금융지주의 CEO 승계 프로그램 구축과 투명성 확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이상 명망가나 낙하산을 충동구매하는 식으로 CEO를 뽑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의 내부평판을 누적시켜 회사 내부에서 CEO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CEO 승계와 선발이 이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과제로 일상적으로 관리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사람을 제대로 뽑지 못하면 제도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금융 당국도 더 이상 모범규준이라는 문서 작성의 틀에만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금융지주에 대한 면담과 검사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지배구조 체계를 개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당국 수뇌부가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꾸준히 금융계에 '메시지'를 전달해줘야 금융지주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