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리빌딩 파이낸스] <2부>④서민금융 기관, 기초를 다시 세운다

옥석 가리기 빠를수록 좋아…종금사처럼 판 깨지는 말아야<br>살릴 곳은 확실히 살려 '서민지원' 제 역할 하도록<br>설립 당시와 환경 달라 기능 겹치는 곳 과감히 통합<br>개인대주주 전횡 심각…지배구조도 선진화 해야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몰아치던 지난 2008년. 위기가 엄습하자 은행들은 사정없이 돈줄을 죄기 시작했다. 1차 피해자는 지갑에 여윳돈을 갖고 있지 않은 서민이었다. 대출금리는 뛰었고 은행은 이들을 외면했다. 서민금융기관이라는 곳이 있었지만 제 역할을 못했다. 저축은행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올인했다가 탈이 났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신용협동조합ㆍ새마을금고 역시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전체 예금에서 대출금을 비교한 예대율은 50~60%에 불과했다. 1970년대에 출범한 서민금융기관. 온갖 구조조정의 풍파 속에서도 은행에서 돈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보루 역할을 해온 서민기관들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유일하게 외환위기,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세 번의 위기를 맞고 있다. 1983년 249개에 달했던 저축은행은 97개로 쪼그라들었고 신협과 새마을금고 수도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부실은 물론이고 내부통제에도 구멍이 뚫렸다. 전문가들은 40년 가까이 된 서민금융기관의 갈 길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단기적으로는 저축은행과 신협 등의 구조조정을 빨리 끝내고 중장기적으로는 기관 간 통합 등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지배구조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옥석을 가리되 판 자체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장은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의지만 앞세우다가는 환란 이후 업권 자체가 사라진 '제2의 종금사'처럼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하되 판 깨서는 곤란=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저축은행이다. 추석연휴 이후 살생부가 나온다. 경영실태가 공개되면 부실 저축은행은 자연스레 퇴출된다. 감독당국은 이번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명운을 걸고 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원칙에 따라 구조조정을 할 것이며 대형사라고 예외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축은행 옥석 가리기가 빨리 실시돼야 한다고 본다. 이대로 가다가는 고객들의 잃어버린 신뢰를 영원히 되찾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저축은행도 금융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경영진단 결과 괜찮은 곳은 지원해 정상화시키고 부실한 업체는 과감하게 도려내야 저축은행업이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저축은행은 반드시 필요한 서민금융기관"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나친 구조조정은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낳는다. 외환위기 때 대대적으로 손을 댔던 종합금융사는 사실상 업 자체가 사라졌다. 금호종금 하나만 남았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축은행은 대형과 중소형을 구분해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판 자체를 깨서는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신협도 건전성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한단계 높은 성장을 위한 명확한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융감독당국은 신협이나 농협 등 상호금융기관의 대출증가를 억제시키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부실을 빨리 털어내고 신용대출을 늘려 서민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마을금고나 농협도 기본원칙은 동일하다. 체력이 허약한 곳은 과감히 파산시키되 어려움에 처한 서민들에게 저리의 자금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민금융기관 재편 필요=중장기적으로 서민금융기관 재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설립된 지 40년 가까이 되면서 당시의 시대상황과 달라진 것이 많고 기관 자체만 놓고 보면 중복이 많아졌다. 서민금융기관의 4대 축인 저축은행, 농ㆍ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외에 우체국도 비슷한 업무를 수행한다. 농협은 전국에 조합만 1,178개가 있고 조합별 지점을 감안하면 수천 개가 된다. 신협과 새마을금고도 조합 수만 각각 982개, 1,501개다. 우체국은 전국에 3,700여개가 있다. 금융권과 당국 안팎에서는 겹치는 서민금융기관을 대대적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각각 주식회사와 비영리법인이기는 하지만 저축은행과 단위조합 등을 합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서민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많고 중복되는 곳들을 합쳐야 한다"며 "신협과 새마을금고 간 합병, 저축은행과 단위조합과의 합병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지배구조 선진화해야=부산저축은행 사태는 금융사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금융의 기본조차 무시하는 경영진과 거수기 사외이사, 허수아비 감사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 대주주의 전횡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지배구조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이 저축은행 사외이사 전문성 요건을 강화하고 감사 보좌기구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추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문제가 된 저축은행은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대주주가 비리를 저지른 경우가 많아 개인대주주에 대한 심사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조합별 상근이사장을 두고 있는 신협도 지배구조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가 크다. 상호유대라는 정신이 흐릿해지면서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다소 퇴색되는 상황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신협도 농협처럼 지배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은 현재 자산 2,500억원 이상 조합은 조합장을 비상근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사유화를 막기 위한 조치다. 책임경영을 한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조합 이사장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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