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설거지 하는 남자


자고로 어른 말씀 잘 들어 손해 볼 일 없단다. 필자의 장모 말씀이 생각나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당신께서는 새댁 때부터 설거지를 도맡아 하셨는데 더울 때는 시원한 물에 추울 때는 따뜻한 물에 손을 담글 수 있어 어려운 줄 모르고 즐기셨다고 한다. 잔치 끝날 때까지 고생했다는 칭찬도 챙기니 금상첨화였다고. 요즘도 가끔 그 생각이 나 일리 있는 얘기라며 머리를 끄덕이고 혼자 미소를 짓곤 한다.

총각 때도 어머니를 도와 행주로 그릇의 물기를 닦는 보조 역할을 종종 하곤 했다. 이렇게 실력을 쌓아 결혼 후에는 독자적으로 설거지를 수행하는 솜씨를 뽐내게 됐다. 불만은 없다. 고맙다는 인사도 듣고 가정적이라는 주위의 칭송까지 더해지니 흐뭇해지기도 한다. 아니, 음식이야 능력이 안 되니 못한다지만 이따금 설거지를 해서 가족이 화목해질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다만 요즘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설거지 횟수도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살짝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진정한 설거지 예찬론은 지금부터다. 설거지는 사고를 키워준다. 얼핏 보면 쉬운 것 같지만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작은 것부터 씻어야 건조대에 쌓기가 쉽다. 설거짓감을 겹쳐 놓으면 서로 묻어 씻기가 두 배로 어렵고 세제도 많이 쓰게 된다. 눌어붙거나 기름 범벅이 된 것은 뜨거운 물에 담가 불린 후에 씻어야 손쉽다. 내가 경험으로 얻은 몇 가지 귀납적 결론이 중요하다기보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과학적 사고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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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나온다. 낮은 데로 흐르고 막히면 돌아가는 물의 미덕을 으뜸처럼 꼽고 있다. 설거지 얘기하다 웬 뜬금없는 사자성어냐 하겠지만 설거지를 하면서 물의 탁월한 능력을 다시 한 번 되새기자니 떠오르는 어구이다. 설거지를 다하고 나면 개수대는 온갖 음식물 찌꺼기로 범벅이다. 이를 어쩌나 할 지경이지만 물을 몇 차례 뿌려주고 닦아주면 개수대는 반짝반짝 말끔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물의 이러한 정화 능력은 마치 나 자신을 재생시켜주는 느낌까지 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 잠깐 치르는 물리적인 의식이지만 이를 통해 그날의 스트레스와 고민을 툭툭 털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정신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이렇게 다가올 내일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에 나는 설거지를 좋아한다.

개인의 경험을 확대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나는 감히 모든 사람들에게 설거지하기를 권하고 싶다. 이를 통해 정신적인 건강을 지키고 가정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같은 범인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또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설거지의 정수를 체험하면 세계 인류 평화의 정착도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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