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엿보기] 악몽같은 첫경험이해규 송암시스콤㈜사장
골프를 친 지 십여년이 넘었는데도 필자는 첫 홀에서 맨 먼저 티샷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처음에 골프채를 잡은 것은 뭐 그리 큰 목표가 있어서도 아니고 특별한 운동을 꼭 해야되겠다고 마음먹어서도 아니라 그저 다른 친구들 노는데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컸다.
십여년전 어느 여름날 몇몇 친구들과 같이 동해안으로 부부동반하여 휴가여행을 떠났는데 회도 먹고 몸이 고단할 정도로 술도 먹고 늦게까지 동양화 감상(?)도 하고 그야말로 피곤하게 하루를 즐기고 밤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음날 12시쯤에 일어나면 아주 개운할 것 같은데, 친구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형수님들 모시고 식사하고 기다려』하는 것이 아닌가.
친구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골프치러 간다고 했다.
「이런 정신 나간 녀석들이 있나」싶었지만 『고단하지도 않냐』고 한마디 하는 것으로 끝냈고, 다음부터는 절대 혼자 남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귀경하자마자 연습장에 등록했고, 하루빨리 본때를 보여주려는 마음에 갈비뼈에 금가는 과정을 거쳐 그럭저럭 출전준비를 마쳤다.
레슨프로의 칭찬에 힘을 얻어 두 달만에 속칭 머리를 얹으러 무슨 「월례회」인가 하는 데를 따라가게 됐다.
참고로 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연습장 월례회」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한 30여명이 8개조로 나뉘어서 라운드를 하는데 나는 제1조에 배치됐다. 그런데 순서를 정하는 침통(?)을 뽑고 보니 1번이 아닌가.
뒤에는 수십 명의 갤러리가 운집한 가운데 티잉그라운드에 들어서니 어찌그리 가슴이 뛰고 불안했던지. 창피당하지 말고 멋있게 날려보내고 싶은 것은 마음 뿐이었다.
돌덩이처럼 굳은 팔로 쳐낸 첫 티오프 볼은 여지없이 30~40㎙ 앞에서 굴러가다 멈추고 또 치니 또 그렇고, 또 치니 또 그렇고,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고 그 갤러리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옆에서 들리는 동반자의 소리라는게 『힘 빼세요! 힘. 어깨에 힘 빼세요! 힘. 머리들지 마시고』
그러나 팔에서 힘이 빠지는게 아니라 힘이 있어야 할 다리에서만 자꾸 빠지고 「이번에는 멀리 갔겠지」하고 머리는 자꾸 번쩍번쩍 들리고 「이런 고약한 레슨프로 같으니라고 날 맨 마지막조에 넣어주던가」하는 생각이 머리에 꽉 들어찼다.
그렇게 정신없이 머리를 얹고 나니 고약하게 폭행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첫 홀 오너는 정말 싫다.
입력시간 2000/08/0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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