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6월 28일] 누구를 위한 비공개 원칙인가

"하루종일 입주예정자와 협력업체 전화에 시달리느라 업무가 마비됐어요. 멀쩡한 회사를 두고 워크아웃 대상이냐고 묻는데 이제는 일일이 답변하기도 지쳤습니다." 지난 25일 시공능력평가액 300위권 내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금융권의 신용위험평가 결과가 발표된 직후 나온 한 건설사 직원의 하소연이다. 물론 이 업체는 이번 실사 결과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채권은행들의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놓고 말들이 많다. 평가부터 발표까지 모든 과정이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채권은행들이 고집한 명단 비공개 원칙은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공식 확인을 거치지 않은 업체 명단이 일부 인터넷 언론에 실시간으로 공개되면서 해당 기업들은 해명하느라 진땀을 뺏고 주가는 춤을 췄다. 한때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장중 상한가로 마감했던 성지건설은 결국 D등급으로 확인되면서 시간외거래에서 하한가로 추락하기도 했다. 채권은행들의 명단 비공개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명단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시장에는 이른바 구조조정 대상 리스트가 돌았다. 실제로 이들의 대부분은 확인결과 구조조정 리스트와 거의 일치했다. 채권은행들은 "원활한 구조조정과 영업활동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워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채권은행 내부에서도 왜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는지 뚜렷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지적이 많다. 평가 과정 역시 비재무적 요소에 대한 잣대가 도마에 올랐다. 숫자로 계량화되지 않은 비재무적 평가항목은 채권은행과 감독 당국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이번 신용위험평가 결과 발표는 구조조정의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업체들의 자구노력 못지않게 칼자루를 쥔 채권은행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장의 오해와 혼란은 이번 한번이면 족하다. 정부와 채권은행이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잃어버린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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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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