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한미동맹 60주년이 되는 올해 5월 초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신뢰와 동맹을 재확인했다.
주목할 것은 이번 방미는 과거 60년간의 동맹관계를 유지ㆍ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특히 양국 동맹관계가 군사동맹과 경제동맹(FTA)을 넘어 신뢰동맹으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격상시킨 것을 비롯해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굳건한 협력관계 유지를 전세계에 알린 의미가 있다.
박 대통령은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통해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세계평화와 공동발전에 한미가 동맹관계로 함께 나아가자고 제안해 전세계가 동북아 강국으로 부상하는 한국을 다시 한번 주목하게 만들었다.
사실 한반도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한번도 동북아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탓에 주변국의 국력이 강해지면 오히려 침략에 노출됐다. 그러나 잇따른 외세 침략 속에서도 지금과 같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외교의 역할이 컸다.
21세기 들어 국제사회의 기류가 변화하면서 우리 외교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2012년에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하며 어느 때보다 우리의 국격은 높아지고 있으나 국제사회가 미국이 주도하던 일원화된 체제에서 유럽연합(EU),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이 주도하는 다원화 형태로 변화하면서 외교와 외교력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주목 받고 있다.
◇외교, 균형 잡으면서 동북아 중심으로 서야=냉전 종식 이후 잠잠했던 동북아 정세는 올해 들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일본은 연일 역사왜곡 발언을 일삼고 중국은 강력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역내 환경이 어느 때보다 거칠어지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외교 역량이 어느 때보다 빛날 수 있는 배경이 조성된다는 것도 의미한다.
박 대통령이 7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나 언급한 '서울 프로세스(동북아평화협력구상)'는 이런 정세의 판단 속에서 나왔다.
서울 프로세스는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 국가 간 신뢰를 쌓은 뒤 정치 분야로 협력영역을 넓혀가자는 방안으로 '서울'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중국이나 일본이 이끌어가던 동북아 정세를 한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서울 프로세스에 북한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 향후 통일로 이어지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게 한 부분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흥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울 프로세스는 최근 동북아 판도를 감안해 한중일 3국 간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방안으로 추진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최근 중국과 일본의 이슈가 많은 가운데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외교를 선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개발도상국들과의 다자 외교를 통한 영향력 확대도 서울 프로세스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 규모는 2008년 8억달러 규모에서 지난해 15억달러 정도로 4년 만에 2배가량 늘었다. 올 1월 공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의 보고서'는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와 2011년 '부산세계개발원조총회'의 주최가 대외 원조 증가 추세와 맞물려 국가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가 이같이 동북아 외교의 중심축에 서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어느 때보다 공고해진 한미관계가 있다. 양국은 7일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통해 양측의 동맹을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정의 '린치핀(linchpinㆍ중심축)'으로 규정하며 어느 때보다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린치핀이라는 표현은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한 뒤 나온 것으로 정상 간 문서에 명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일본과의 관계는 린치핀이라고 규정해온 반면 우리나라는 그보다 급이 낮은 코너스톤(cornerstoneㆍ초석)이라고 규정했었다.
◇국력에 버금가는 외교력을 갖춰야=외교력은 국력에 비례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외교관이 배출된다 하더라도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비스마르크나 메테르니히 같이 19세기 유럽을 주름잡았던 외교관들은 강한 국력이라는 기반 위에 외교 수완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해당 국가의 대외적 이미지가 좋아 국력의 열세를 만회한 사례도 있다. 싱가포르ㆍ스위스ㆍ룩셈부르크 등은 각 나라가 갖고 있는 좋은 대외 이미지로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강소국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 또한 이 같은 국가 이미지 제고로 국력에 버금가는 외교력을 갖기 위해 애쓰고 있다. 외교부가 해외문화사절단으로 일반인을 활용한다는 방침을 최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1970년대만 해도 미국 국무부의 동북아 담당 국장이 우리나라 외교 이슈를 좌우했지만 현재는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부 장관이 직접 챙길 정도로 우리나라의 국력이 커졌다"며 "경제력뿐만 아니라 스포츠나 문화 부문 등에서 골고루 성과를 낸 덕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 브랜드 순위는 지난해 13위로 2009년에 비해 무려 6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이 중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과 런던올림픽 종합순위 5위의 기록이 브랜드 순위 상승에 일조했으며 삼성전자 등이 주도하고 있는 국내 IT시장 또한 국가 브랜드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다만 우리나라 외교가 다양한 국가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올바른 행동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데올로기로 국가 간 진영이 나눠졌던 이전과 달리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문화적 결례나 한국인의 추태 하나가 국가 이미지를 단숨에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망 받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과 제도적 뒷받침, 개도국 지역과의 교류 확대 등을 통해 여러 문화에 대한 포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