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기업과 명예

손철 기자 <산업부>

“기업인에게는 (돈보다) 명예가 더 소중합니다.”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서 투신자살한 한 기업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같이 표현했다. 이 회장의 이 한마디는 당시 기업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로 듣는 이들에게 감명을 줬다. 같은 기업인으로서 슬픔을 함께하는 진실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은 명예보다 돈이 더 소중한 것일까. 이 회장이 이끄는 코오롱그룹이 최근 오리온전기 인수와 관련해 거짓 발표를 한 것으로 들통나 눈총을 받고 있다. 4일 코오롱이 오리온전기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자 코오롱은 즉각 이를 부인했다. 공시책임자인 김모 부사장은 “유기EL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오리온전기 매각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7일 증권거래소의 오리온전기 인수설에 대한 공시요구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3일 만에 입장이 바뀐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3일 전에 거짓말을 한 것이다. 코오롱의 한 관계자는 “미묘한 사안이라 사실대로 밝힐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3일 전 발표는 전략적 거짓말이었다”고 설명했다. 진실을 엄폐한 장막이 예상치 않은 시장의 ‘호루라기’에 걸려 벗겨진 셈이다. 코오롱은 인수합병(M&A)의 성공을 위해 명예를 버린 것이다. M&A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밝혀진 내용을 아니라고 거짓말하면서까지 숨길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도 불과 3일 만에 들통날 거짓말을 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누구인가. 최근 능률협회 조사에서 기업인이 체감하는 기업가와 기업의 점수는 각각 40점, 55점으로 낙제점을 면하지 못했다.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열쇠는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에 있다. 이에 대해 어느 기업인은 “현장에서 가까이 보이는 이익에 정신이 팔리면 투명성은 순위가 밀리기 십상”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아는 것을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업에도 명예는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는 기업의 명예가 곧 기업의 생존력으로 연결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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