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원인규명 없이 업계 자성만 요구/고속철 부실 정부­업계 간담회

◎비공개로 진행… 시공업체 불만 차단/발주처 공단·설계측 잘못 슬쩍 넘어가「정부와 민간 업계는 영원한 주종관계인가.」 21일 상오 11시 과천 정부2종합청사 건설교통부 대회의실에서 이환균 건교부장관, 윤주수 고속철도공단 부이사장과 경부고속철도 12개 시공업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간담회는 이같은 의문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간담회는 미국 WJE사가 경부고속철도 시험선구간에 대한 안전점검에서 지적한 사항의 보수와 앞으로의 공사추진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회의는 정부에서 민간으로의 지시만 있는 일방통행이었다. 그나마 비공개로 진행됐다. 회의에서 이장관은 『안전진단 결과 재시공이나 보수해야 할 사항은 WJE가 제시하는 방법에 따라 완벽하게 보수하고 향후 정밀시공으로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고속철도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이장관은 또 부실 유형별로 원인을 밝혀 민·형사적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릴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발주처인 공단과 설계측의 잘못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넘어갔다. 이에 대해 업계 대표들은 『발주처의 지시와 설계대로 했는데 시공사만 매를 맞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불만의 내용과 강도는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뒤탈」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잦은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지연으로 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정밀 시공을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는게 고작이었다. A사 관계자는 회의가 끝난 뒤 『정부가 국민들의 비판여론을 등에 업고 시공사들을 몰아가는 마당에 무슨 불만을 털어 놓겠느냐』며 『부실의 원인에 대한 포괄적인 규명없이 업계의 자성만을 요구하는 관의 행태는 여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교좌장치의 부실공사를 지적받은 B사측은 공단의 「책임회피 행정」을 강력히 비판했다. 『공사 과정의 부실은 책임을 인정하고 완벽히 보수하겠다. 그러나 문제가 된 교량 방식과 공법을 지정해준 공단측의 책임은 없냐』고 반문했다. J사 관계자는 『발주처인 건교부와 공단이 「쇼」를 하고 있다. 정부가 정치논리에 매달려 졸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주먹구구식 사업추진을 해오고서 모든 책임을 시공사로 돌리고 있다. 공단측이 해당 시공사에 안전진단 결과를 공식 통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먼저 공개하고 책임문제부터 꺼내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단측은 간담회를 마치면서 시공업체들이 잘못을 시인하는 「대국민 사과성명서」를 내도록 시달했다. 업계 대표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이날 간담회 진행과정은 공단측이 안전진단을 받기로 한 결단의 상당부분을 퇴색케 했다.<성종수>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