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레저문화 확산따른 구조적 불황/중·인니 등 후발국 추격도 겹쳐 “사면초가”/신제품개발 등 자구책도 별 무효과… 한숨만「세계일류화업체가 무너져버렸다」.
정부로부터 국제적인 수출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중점 육성업체로 선정됐던 삼익악기가 지난 23일 부도를 내자 악기업계는 그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익의 부실한 경영구조 등 내부요인이 크긴 하지만 악기업계의 전반적인 불황국면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는 현실에 모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출국으로 각광받던 한국의 악기 수출은 지난 89년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올들어서는 그 감소폭이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8년까지만해도 한해 1억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리기도 했던 업라이트피아노는 지난해 절반수준인 5천8백만달러어치를 수출하는데 그쳤다.
올들어서도 8월말까지 업라이트피아노의 경우 지난해보다 19.3%, 전자악기는 40%나 줄어들어 업계관계자들을 당혹케 만들고 있다. 중소업체들이 주력하고 있는 기타 수출도 올상반기중 전년동기대비 11%나 줄어들었다.
내수시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 편이다.
80년대 중반까지 소득 증가에 힘입어 급성장했던 피아노 시장은 94년엔 15만대로 줄어드는 등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악기협회의 한 관계자는 『컴퓨터보급 확대와 건설경기 침체, 야외레저문화의 확산 등이 겹쳐 피아노 판매가 한계에 봉착해 있다』면서 『선진국의 경우 이미 5∼6년전부터 피아노 보급이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때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던 국내악기산업이 이제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한계를 반영, 점차 경쟁력을 상실하고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셈이다.
이에대해 업계에서는 전형적인 노동집약적 업종인 악기산업이 임금 및 원자재가격 상승이라는 고비용부담을 극복할만한 체력을 미처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무서울 정도로 추격해오고 있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동구권의 제품에 밀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시장에서 점차 바이어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악기업체들은 그동안 해외 진출·신제품 개발 등 자구노력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큰 효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영창악기 등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최근들어 중국·인도네시아·미국 등지에 앞다투어 현지공장을 설립하고 피아노나 기타, 바이올린, 부품등을 현지에서 직접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세우지 못한채 현지사정에도 어두워 당초 기대했던 만큼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또 전국적으로 1백50여개의 악기업체가 가동중이지만 대부분 영세중소기업이라 자체적인 기술축적없이 손쉬운 OEM(주문자상표생산)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해외 인지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전자악기의 경우 핵심부품인 음원칩의 개발능력이 없어 대기업들조차 해외에서 들여와 제작하고 있는 형편이다.
악기업계의 관계자는 『악기업계의 침체는 현재 우리나라 경공업이 처한 구조적인 한계상황과 일치한다』면서 『고급 브랜드와 신제품 개발만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이지만 현재 여건에서는 쉽지않은 실정』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정상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