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에 다니는 A씨는 최근 일년만에 한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지난해 6월 5개은행 퇴출 이후로 연락을 끊었던 전 경기은행원 B씨가 이제서야 자리를 잡았다며 전화를 걸어온 것. B씨는 그동안 줄곧 집에서 지내다가 얼마전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벤처기업에서 일하게 됐다며 『이제 새 일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말했다.지난해 6월 많은 전·현직 은행원들에게 「최악의 여름」이 시작됐다. 초유의 은행 퇴출로 「안전성」을 생명으로 하던 은행의 지위가 뿌리채 흔들리고, 대동 동남 경기 충청 동화 등 5개 은행의 수천여 직원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6.29」 당시 5개 퇴출행행 직원은 총 8,811명. 이중 3,151명은 각각의 인수은행으로 재고용됐지만, 나머지 5,660명은 B씨처럼 졸지에 은행원에서 실업자로 전락해야만 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그들중 일부는 그동안 모아뒀던 돈을 털어 소규모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보험회사 영업직원이나 파산법인, 2금융권, 성업공사의 계약직원으로 금융계와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 경우는 드물다.
계약직으로나마 직장을 잡은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재고용에서 누락된 상당수의 퇴출은행원들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정이다. 재고용된 한 퇴출 은행원은 『가끔 옛 동료들을 만나는데, 집에 있는 사람이 태반을 넘는다』며 『어쩔 수 없이 뒤늦게 사법고시나 유학 준비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한편 인수은행으로 재고용된 3,000여명은 대부분 새로운 조직에 흡수돼 은행원으로서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신한은행으로 고용승계된 옛 동화은행 직원은 『처음 한두달 정도는 기업문화 차이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고 따돌림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퇴출은행 직원이기때문에 받는 불이익은 전혀 없다』며 만족해했다. 『직장을 잃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퇴출은행원들이 기존 직원들보다 매사에 열심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낯선 환경에서 버텨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재채용된 3,151명 가운데 307명은 1년을 못버티고 인수은행 문을 뒤로 했다. 인수은행 관계자는 『본래 일년에 일정 인원수는 자연 감소한다』면서도 『새로운 환경과 과중한 업무에 적응을 못하고 퇴직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경립 기자 KLS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