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공정성·객관성 확보가 성공 관건

■ '한국판 컨슈머리포트' 만든다<BR>제품·서비스 품질검증엔 엄청난 비용·시설 필요… 조직·예산 지원도 필수<BR>"착한 가격 업소 공개등 순차적 사업 추진으로 초기부담 줄일수 있을것"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판 '컨슈머리포트(Consumer Reports)'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LCD TV가 미국의 세계적 소비자잡지인 컨슈머리포트 표지모델이 된 2009년 3월호.

#1.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소비자연맹(CN)이 75년간 발간해온 월간지 '컨슈머리포트(Consumer Reports)'에는 지난해 일본 도요타의 2010년형 렉서스 승합차가 '안전하지 않은 차'라는 내용의 평가가 실렸다. 전복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게 혹평의 이유였다. 도요타는 즉각 해당 차량의 판매를 중단했다. 컨슈머리포트는 온ㆍ오프라인을 포함해 총 720만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확보하며 미국의 소비시장 판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2.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보호원(현 소비자원)이 24년 전부터 '소비자세상'이라는 시장가격ㆍ품질정보 월간지를 발간하고 있다. 이 월간지 역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품질평가 등을 담으며 한때 발행부수가 3만부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1만부로 줄어든 상태.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나 대중적 인지도 역시 아직은 미미하다. 컨슈머리포트와 소비자세상의 현격한 차이는 양국의 내수시장에서 가격과 품질을 주도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컨슈머리포트의 평가 한줄한줄에 글로벌 대기업들까지도 벌벌 떠는 것은 소비자들이 시장을 움직이는 주인공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국판 컨슈머리포트 도입 의지를 강력 피력한 것도 물가잡기의 어려움이라는 심정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적으로 시장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만큼 소비자가 주체가 돼 시장가격 거품을 가라앉히는 것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간 소비자단체가 주축이 돼 전국의 주요 생활물가 정보를 리스트화해 시민에게 공개하면 이를 소비자원이 정부의 각종 데이터와 함께 취합해 통합 공시하는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판 컨슈머리포트로 완성되려면 먼저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우선 전문성과 사업비용의 문제다. 컨슈머리포트는 일체의 광고수입을 받지 않고 있지만 구독료 등으로 연간 2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이를 바탕으로 전문인력과 연구시설에 투자하고 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철저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컨슈머리포트는 50여개의 실험실은 물론 자동차 회사들이 보유한 자체 성능 테스트장까지 갖추고 있다. 관련 인력이 600여명이며 이중 제품ㆍ서비스의 품질과 안정성 등을 검증하는 테스트 전문가는 100여명, 조사전문 요원은 25명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같은 실험시설은 물론이고 재원과 인력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열악하다. 그나마 정부의 예산을 지원받는 소비자보호원이 290여명(정직원은 60여명)의 인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중 상당수가 소비자교육ㆍ민원상담ㆍ분쟁조정 담당자이며 제품ㆍ서비스 품질검사를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은 30여명에 불과하다. 기초실험시설도 미비해 연간 품질ㆍ안전성 등의 테스트 횟수는 40~50건에 불과하다. 매년 천문학적으로 쏟아져나오는 소비재를 검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진정 한국판 컨슈머리포트의 탄생, 소비자주권시대를 안착시키려면 그에 수반되는 조직과 예산의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불과 연간 수억원만이라도 소비자 안정성ㆍ품질 실험예산으로 증액된다면 지금보다 더 질 높은 소비자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정부로서는 당장 재정건전성 문제로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어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예산을 지원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박 장관도 소비자단체를 통한 시장가격공개 운동에 대해 "솔직히 전수조사를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 감당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며 "그래서 일단 '착한 가격'을 유지하는 업소들을 시민들로부터 추천받는 식으로 우등생 리스트를 만드는 방식으로 우선 사업을 추진하면 초기 사업비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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