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13일] 브레티뉴의 결혼

[오늘의 경제소사/12월13일] 브레티뉴의 결혼 혼수를 가장 많이 넘겨준 신부는 누굴까. 브르타뉴의 상속녀인 안(Anne de Britanny)다. 브르타뉴는 프랑스 서부해안가에 위치했던 공국(公國). 1491년 12월13일, 샤를8세와 안의 결혼으로 사실상의 독립국이던 브르타뉴 지역은 프랑스왕의 직할령으로 들어간다. 영국과 백년전쟁(1337~1453)이 끝나고 왕권강화가 추진되던 시기다. 안의 당초 정혼자는 오스트리아 막시밀리안1세. 혼담은 프랑스의 개입으로 깨졌다. 프랑스 발루아왕가는 브르타뉴공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상속녀가 된 안의 영지를 탐냈다. 청혼은 집요했다. 4만명의 군대가 동원된 무력시위 끝에 결혼이 성사된다. 샤를8세 21살, 안은 14살이었다. 마지못해 승낙한 결혼생활이 7년간 이어졌지만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샤를8세가 28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후계는 매형에게 이어졌다. 르네상스 문화를 프랑스에 들여오고 행정제도를 개편해 '국민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얻었던 루이12세, 바로 그 사람이다. 루이12세는 '젊고 돈(영지) 많은 과부'를 가만 두지 않았다. 선왕 샤를8세의 누나인 잔과 이혼하고 처남댁 안과 재혼한 것. 또 다시 왕비가 된 안은 딸만 둘 낳았다. 왕권은 이번에도 사위가 계승했다. 맏딸 클로드와 사위 프랑수아1세 사이에 1519년 아들이 태어난다. 앙리2세다. 모계로 이어진 봉토 귀속권은 완전히 프랑스왕 부계로 넘어왔다. 땅에 얽힌 애증의 세월도 끝을 맺었다. 안이 오스트리아왕과 결혼했다면 브르타뉴 지역은 다른 나라가 됐을지도 모른다. 합스부르크가에 넘겨진 부르고뉴 지역이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로 떨어져나간 것처럼. /권홍우ㆍ경제부차장 입력시간 : 2004-12-1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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