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위「386세대」가 뜨고 있다.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총칭하는 이 말은 전문성과 패기를 함께 갖춘 이들이 21세기 이 나라를 이끌어갈 「젊은 피」임을 함축하고 있다.「386세대」만큼 매스컴을 타지는 못하지만 「475세대」라는 말도 있다. 「386세대」에 비해 어학실력도 뒤처지는데다 미래혁명의 수단인 컴퓨터에도 어두워 용도폐기(?) 직전인 40대, 70년대 학번, 50년대생을 일컫는 말이다.
자조적이든, 비아냥거리는 말이든 급변하는 사회현상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조어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가뜩이나 치이는 이 「475세대」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일이 생겼다. 고(故)박정희(朴正熙)대통령에 대한 용서와 화해 논란이 그것이다. 단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개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정부가 민간과 힘을 합쳐 기념관 건립을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는…. 현직대통령이라는 점을 떠나 朴정권 시절 그가 감내해야 했던 정치적 핍박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알기에 더더욱 金대통령의 이 말이 갖는 정치·사회·역사적 무게는 남다르다.
또 그런만큼 대학시절을 온통 반유신데모와 그로인한 휴교의 악순환속에서 보낸 「475세대」들이 맛보는 당혹감 역시 적지 않다. 지난해든가, 어느 언론사에서 실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朴 전대통령이 꼽혔을때도 이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고 흐르는 시간이 쌓아올린 세월의 두께는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특히 망각이란 편리한 두뇌구조를 갖고 있는 인간에겐 더욱 그렇다.
화해와 용서는 아름다운 일이다. 더욱이 그로인해 과거와 현재의 걸림돌이었으며 또 미래로 나아가는 발목을 옥죄고 있는 지역간의 대립과 반목, 갈등이 한순간에 녹아 내릴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청산이나 정리는 그 절실한 필요성과는 별개로 엄정해야 한다. 사자(死者)에 대한 막연한 관용이나 정치적 이해로 재단될 일이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역사」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朴 전대통령만큼 애증(愛憎)이 엇갈리는 지도자도 드물다. 우리 경제가 이만한 볼륨으로 커진 것은 그의 탁월한 리더십과 뚜렷한 소신, 철학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朴 전대통령이 이나라 역사에 남긴 부(負)의 유산도 그에 못지 않다. 지금 우리가 그토록 뽑아버리려고 애써도 굳건히 똬리를 틀고 있는 지역감정·정경유착·관치금융·부정부패·결과우선주의 등이 모두 그의 통치기간에 뿌리내렸다. 「朴正熙 시대」가 본원적 자본축적의 시기였음을 십분 동의한다고 해도 아직 그의 집권 18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개운치 않은 무엇인가가 남는 이유다.
단절이나 응징, 또는 미화의 차원을 넘어 그야말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475세대」의 한사람이 갖는 소회라면 그 뿐 이긴 하지만…. /JW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