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12거래일 만에 찾아온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수에 힘입어 단숨에 1,930선을 회복했다. 유럽발 세계 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가 다소 진정됐고 신흥국 증시를 짓눌렀던 달러 강세 기조도 점차 완화되는 등 코스피를 둘러싼 대외환경이 조금씩 개선되는 모양새다. 특히 지난 두 달간 4조원이 넘는 국내 주식을 팔았던 외국인이 전기전자와 운송장비 등 대형주를 사들이며 지수상승을 이끈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강한 매도세는 한풀 꺾였지만 국내 증시를 이탈했던 외국인 자금의 귀환으로 보기에는 이르다"면서 "10월 말까지는 코스피가 바닥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아직까지 외국인의 셀 코리아(Sell Korea)가 추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며 최근 주가급락에 따른 기술적 반등의 성격이 더욱 짙다는 얘기다.
20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55%(29.40포인트) 오른 1,930.06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는 지난주 장 중 한때 1,900선까지 무너졌지만 이날 외국인과 기관이 오랜만에 동반 매수에 나서면서 단숨에 30포인트를 만회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유로존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유럽 등 선진국 주식 시장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쇼크 수준까지 밀렸다"면서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우려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투자심리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잇따른 대외악재로 국내 증시를 떠났던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나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외국인은 이날 271억원 매수 우위를 기록하며 11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멈췄다. 외국인은 지난 9월부터 전 거래일까지 약 두 달간 4조194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며 지수하락을 이끌어왔다. 기관도 연기금(242억원), 보험(282억원), 투신(82억원) 등의 자금유입으로 1,100억원 순매수를 기록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쌍끌이 매수를 기록한 것은 9월30일 이후 12거래일 만이다.
이날 외국인이 사들인 업종을 살펴보면 미묘한 변화의 기미가 감지된다. 외국인은 최근 연속 순매도(10월1일~10월17일) 구간에서 삼성전자(005930)가 속해 있는 전기전자 업종 주식을 390억원어치 내다 팔았고 현대차(005380)가 있는 운수장비 업종 주식은 무려 3,736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이날은 전기전자 업종 주식을 가장 많은 1,140억원어치 순매수했고 운수장비도 220억원어치 사들였다. 건설 역시 같은 기간 895억원 순매도에서 65억원 순매수로 전환했다. 종목별로 보면 이날 하루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삼성전자(935억원), 삼성SDI(006400)(184억원), 현대차(128억원), 삼성중공업(010140)(115억원), 기아차(000270)(81억원), LG전자(066570)(78억원) 등의 순이었다. 김용구 연구원은 "전기전자 업종의 경우 삼성전자가 3·4분기에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지만 주가에 선반영됐고 업종 전반적인 실적은 양호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외국인 자금이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대차 역시 최근 주가 하락이 과도하게 이뤄지면서 이에 따른 반발 매수세가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매도세가 진정되는 국면이지만 추세적으로 굳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당장 21일 발표되는 중국의 경제성장률(GDP) 결과와 26일 예정된 유로존 은행권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가 주목된다. 이달 말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테이퍼링 종료를 선언한 후 앞으로 미국 통화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도 관심거리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지난 두 달간 한국 증시에서 집중적으로 팔았던 외국인의 순매도가 정점을 지난 것은 맞다"면서 "하지만 외국인의 순매도 기조가 변한 것은 아니고 대외 이벤트도 남아 있는 만큼 코스피는 단기 바닥을 확인한 후 추세 상승보다는 저점을 테스트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