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하늘에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상쾌하게 볼을 만지던 아기바람이 옷자락을 나부끼며 떨어지는 낙엽을 흔들고는 황망하게 달아난다. 청첩장도 하루를 멀다하고 날아든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 누군들 혼자이고 싶겠는가.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하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고 축하 받을 일이다. 그런데 결혼 30년 차가 다된 나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아직도 외국어처럼 어색하고 낯설다. 아마도 내가 남녀 간의 공공연한 애정표현이 금기시되는 권위주의적인 가부장 사회에서 자란 탓이거나 아직도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갑자기 사랑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정신분석학자이며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형제애,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의 유형을 설명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①어떤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②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마음을 베푸는 일 ③어떤 대상을 매우 좋아해서 아끼고 즐기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고 있다. 로맨스 영화 '러브 액추얼리'는 남녀의 다양한 사랑을 보여준다. 짝사랑에 빠진 열한살짜리 샘은 '사랑보다 더 큰 고통이 있나요'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남녀 간의 사랑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수많은 문학과 예술의 주제가 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남녀 간의 사랑은 임신과 출산·육아로 이어지는 모성적 사랑의 예비과정일 뿐이다. 모성적 사랑은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필연적 관계로 출발해서 아이의 성장과 발전에 필요한 것과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을 내용에 담는다. 이 경우 사랑의 본질은 이타적이고 종착점은 아이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성적 사랑은 자녀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하더라도 사랑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은 선택적 관계로 출발해서 자기 자신의 주관적 선호와 만족을 내용으로 채운다. 이러한 사랑의 본질은 이기적이고 종착점은 자신의 행복한 삶이다. 따라서 남녀 간의 사랑은 자신의 주관적 선호가 바뀌거나 대상자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하면 사랑을 포기할 수도 있고 대상을 바꿀 수도 있다. 그 결과 실연도 당하고 황혼이혼도 생긴다. 실연의 상처는 기대의 좌절과 상실이라는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된 아픔이다.
이와 같이 모성적 사랑과 남녀 간의 사랑은 출발과 본질, 그리고 종착점과 대상의 가변성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다른 현상을 굳이 사랑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진정한 사랑과 위장된 사랑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가을이 떠나기 전에 더 많은 청춘남녀가 짝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으로 가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낙엽이 지기 전에 아내나 남편에게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자칫 혼자서 외롭고 추운 겨울을 보내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