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아름답지 못한 퇴장


양건 전 감사원장이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처음 밝힌 것은 지난 23일이었다. 휴일을 앞둔 금요일, 그것도 늦은 퇴근시간에 알려진 이 뉴스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왜 지금이지'였다.

바로 며칠 전 현직 감사원 공무원까지 포함된 지인들의 식사자리에서 양 전 원장은 화제였다. 양 전 원장을 임명했던 이명박 정부의 최대 치적인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부터 얘기가 시작됐다. 감사원 직원은 4대강 감사결과를 처리하는 양 전 원장의 고민을 얘기했고 '정치감사'논란에 대한 감사원 감사의 불가피성과 한계에 대해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결론은 양 전 원장이 두 번의 사퇴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한번은 새 정부 출범 전후였고 또 한번은 7월 제 3차 4대강 감사결과를 발표하기 전이었다. 4대강 감사는 그동안 3차례 있었고 양 전 원장의 재직 중에는 새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1월을 포함해 두 번 있었다.

그래서 양 전 원장이 사의를 밝혔을 때 든 생각은 뜬금없다는 것이었다. 헌법상 탄핵이나 금고이상의 죄를 짓지 않는 이상 임기가 보장된 자리이고 헌법학자로서 감사원장의 임기유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소신처럼 밝혀왔던 그가 왜 이 시기를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이후 이어진 언론의 분석은 4대강 감사 외에도 신임 감사위원의 임명 제청과정에서 청와대 등 정권핵심과 대립과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주말을 지나 월요일인 25일 오전 양 전 원장은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을 절감했다"는 분명치 않으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킨 이임사를 남기고 감사원을 떠났다. 주말 동안 청와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양 전원장의 사표를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임사에 대한 야야 모두의 반응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는 것이었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갈릴레오처럼 적절한 양심고백을 하고 제대로 마무리했어야 한다"고 했고 새누리당의 한 친 이명박계 의원은 "이제 와서 외풍 운운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평가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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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전 원장의 퇴진과정은 이처럼 자기 모순투성이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독립성을 위해 자신의 잔여임기를 채우는 것을 소신처럼 밝혀왔던 그가 4대강 감사든 인사 갈등이든 무엇이든 간에 별안간 손을 놓았다.

실제 양 전 원장은 4월 자청한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유임 전화를 받았다"고 공개했다가 기자들과 여야 의원들로부터 일제히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이 같은 모순투성이 퇴진은 불과 5년 3개월 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전윤철 전 감사원장의 퇴진과도 너무 유사하다. 그러나 전 전 원장은 '쿨'했다. 그는 "임기를 지켜야 할 책무도 있지만, 새로운 정부가 새로운 팀워크를 구성해 국정수행을 할 수 있도록 퇴임을 결심했다"고 사퇴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임식을 했다.

감사원법상 감사원장의 보수규정은 부총리보다 높고 총리보다 낮다. 이를 공무원의 의전 순서로 보면 대통령과 총리 다음의 서열 3위의 고위직 공무원이다. 또 감사원은 국가 최고의 감사기관이다.

그래서 감사원을 지칭할 때 '추상(秋霜) 같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가을 서릿발 같은 서슬 퍼런 기율을 의미한다. 또 이 같은 기율은 헌법상에 감사원을 독립기관으로 명시하면서 보장돼 있다.

그런데 5년마다 반복되는 감사원장의 부적절하고 아름답지 못한 퇴장이 이 같은 칼날을 무디게 하고 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앞으로 5년 후에도 전임 정권이 임명한 감사원장이 진퇴를 고민해야 하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열 3위의 고위직 공무원이었던 양 전 원장의 사퇴는 '개인적인 결단'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가 말한 '안팎의 역류와 외풍'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는 것은 그가 한때 몸담았던 조직과 또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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