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광우병 소동과 닮은꼴 경제민주화






집단으로서 대중은 감성에 보다 휘둘리며 확 뜨거워졌다가 금새 식는다. 불과 4년 전 온갖 횡행하던 논리와 주장들 속에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논란을 다시 생각해봐도 그렇다.

초등생과 중학생 등 어린 학생들마저 광장으로 끌어들였던 뜨거웠던 그해 여름은 지금 돌이켜보면 아득하다. 시간은 흘러 광우병 소동은 이후 무엇 하나 크게 변한 것도 없는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흥분하고 저항했는지 기억을 못할 정도로 이 소동을 까맣게 잊었다.

결과적으로 실체가 없었던 광우병 파문은 새로 출범한 정권을 초기부터 식물상태로 만들었고 대선과 총선의 연이은 참패로 급전직하까지 갔던 야당에게는 회생의 기회를 줬다.

요즘 정치권에서 최대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논란도 이와 반대의 경로를 밟으면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때 논의를 주도했던 야당과 시민단체 대신 이번에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이 역할을 하면서 경제민주화의 모든 이슈에서 한발 앞서 나가려 하고 있다.

포퓰리즘에 거세지는 대기업 옥죄기


핵심은 이 같은 논란이 실체가 있는지 또 그만한 값어치가 있느냐일 것이다. 여야 모두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규제만 놓고 봐도 현실적으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축인 기업의 손발을 묶고서 얻을 실익이 무엇일까. 여기다 새누리당이 더욱 강성인 금산분리강화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규제로서 은행과 보험ㆍ증권ㆍ카드 등 우리 금융산업 자체를 아예 씨까지 말려 외국자본에 넘겨주려는 시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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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힘을 앞세워 시장질서의 틀을 벗어나고 있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관행 등 일부는 손 봐야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법령과 제도의 틀 속에서 이 부분들을 보완하고 강화하면 된다.

그럼에도 경제민주화에서 정치권의 표심 얻기 경쟁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소의 뿔 모양을 바로 잡으려다 결국은 소를 잡게 되는 꼴이다.

대중의 인기를 자양분으로 하는 정치가 경제적으로는 비생산적이지만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논쟁을 할 수 있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인 정치와 경제는 그렇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둘러싼 경제환경이 건강한 이분법적 구분을 허용할 만큼 녹록지 않다. 당장 세계경제의 화약고가 되고 있는 유럽발 재정위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게 위급한 상황 속에서 경보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 또 여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 경제도 위험신호를 곳곳에서 내보내고 있다. 지난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뒷걸음질하는 수출 등 실물경제에서부터 9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 수준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수준이다. 하나하나 모두 우리 경제를 한방에 주저 앉힐 메가톤급 위력을 갖고 있다.

민주당의 민병두 의원은 최근 "재벌개혁 논쟁은 전략 없이 반감(反感)동맹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서민이 가장 절박하게 원하는 것은 재벌개혁을 넘어 악화된 체감경기를 돌파할 해법"이라고 밝혔다. 본질을 제대로 본 발언이다.

경제민주화가 추구하는 것은 경제적 형평이다.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접근이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토대가 없으면 또 그만큼 공허한 소리이기도 하다.

뿔 고치려다 소 잡는 일 없어야

선거는 대부분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현실의 문제보다는 앞으로의 이상적인 모습들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한다. 그렇더라도 현실이 위기 비상상황이라면 이 같은 전통적인 접근도 바뀌어야 한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이 결국 가라앉은 것은 흥분했던 대중들이 사실관계에 대해 꼼꼼히 챙겨보는 냉정함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대선이 불과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군중심리 속에 감성에 휩쓸리기보다 차분한 이성을 찾았으면 좋겠다. 4년 전 광우병 소동과 작금의 경제민주화 논란이 같은 길을 가게 되면 결과적으로 가장 불행해지는 것은 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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