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이 파산할 당시 이름도 듣지 못한 인도의 섬유기업이 엔론의 ‘로터 브레이드’ 기술을 인수했다. ‘로터 브레이드’ 기술은 바람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주는 풍력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8년이 지난 2009년. 당시 이름도 없던 섬유기업은 아시아 1위, 세계 5위의 풍력발전 통합 솔루션 업체인 ‘수즈론에너지’로 거듭났다. 한국 기업들이 무섭게 성장하는 신흥국 기업들과 선진국 기업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5일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신흥국 기업들은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과 한국을 포함한 신아시아 공업국의 기업들이 주춤하는 사이 매출액이 10.8%나 늘어나며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무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신흥국 기업의 기술 및 인수합병(M&A) 역량, 니치시장 공략 등 성공비결을 우리 기업들의 성장전략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 이후 부상하고 있는 신흥국 글로벌 기업은 주로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 등 브릭스 국가에 편중되고 있으며 매출과 시가총액에서 이미 신아시아 공업국을 능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흥국 200대 기업의 평균 매출과 시가총액은 선진국 200대 기업의 14%와 19%에 그쳤지만 신아시아 공업국 200대 기업보다는 각각 1.1배, 2.3배나 많았다. 신흥 글로벌 기업을 업종별로 살펴보면 자원과 에너지 업종에 200개 업체 중 21%가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주력 업종인 전기ㆍ전자에는 12개 기업, 철강ㆍ금속 산업에는 22개 기업이 포진하고 있다. 연구소는 신흥국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으로 ▦글로벌화로 인한 교역과 직접투자 확대 ▦보호된 내수시장에서의 지배력과 정부지원 ▦기업의 전략적 역량 축적 등을 꼽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대표적인 신흥 글로벌 기업으로 브라질의 엠브라에르, 남아공의 사솔, 인도의 수즈론에너지, 멕시코의 세멕스 등 8개 기업을 들었다. 엠브라에르의 경우 1969년 농약살포용 경비행기 제조 국영기업으로 출발해 보잉ㆍ에어버스 등 메이저 항공업체들이 외면하는 70~110석의 중소형 제트비행기 시장에 진출, 2009년 현재 항공기 제작 세계 4위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철저한 니치마켓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멕시코의 시멘트 업체인 세멕스는 1990년대 초반부터 전략적인 글로벌 M&A로 세계 3대 메이저 업체로 성장했다. 또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컨테이너 업체로 부상한 중국의 CIMC는 국영기업의 한계를 벗어나 조기 상장을 통한 자금확보로 독일의 그라프, 영국의 스미스코울리 등 특수 컨테이너 제작사와 합작 및 지분인수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 수석연구원은 “신흥국 글로벌 기업의 부상에는 기술역량 등 기업 자체의 역량뿐만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작용했다”며 “우리 중소ㆍ중견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법제도 정비, 규제완화 등 성장친화적인 경제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