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 보면 갖가지 벽에 부닥치게 된다.
남이 쌓아놓은 벽에 좌절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스스로 벽을 쌓기도 한다.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벽을 허물기 전에는 암담할 때도 많다. 물론 벽 중에는 넘어야 할 것도 있고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것도 있다.
1961년 8월13일 아침, 베를린에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막 잠에서 깬 베를린 시민들은 밤 사이에 눈앞을 가로막은 낯선 콘크리트 장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서 베를린을 잇는 13개 도로와 80개 통로에도 밤 사이 철조망이 쳐졌다.
철조망 장벽의 길이는 45㎞. 철책에는 전류가 흘렀고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로 된 높이 2m, 폭 2m의 장벽이 베를린 시민들의 왕래를 금지시켰다.
1949년 동독정권 수립 이래 매년 20만명씩 무려 250만명이 경계를 넘은 상황에서 동독정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특히 전문직과 숙련 노동자의 탈출로 자칫하면 동독의 기술ㆍ산업기반이 붕괴될 판이었다.
동독 인민회의는 서베를린으로 가는 길을 막기 위해 장벽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동독의 베를린 장벽 구축은 서독과의 체제경쟁에서 스스로 패배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동서냉전의 상징으로 영원할 것 같던 냉전의 벽에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장벽 붕괴는 1989년 여름, 헝가리를 통해 국경을 넘은 수많은 동독인들이 서독대사관에 들어가 서독행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면서 예고됐다.
이어 동독 내에서 민주화시위에 불이 붙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늦게 오는 자는 역사가 처벌한다”는 말로 에리히 호네커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현실화됐다. 28년간 독일인들을 갈라놓은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9일 저녁7시 결국 무너졌다.
/박민수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