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정기예금이 마침내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해 초저금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정기예금은 가장 안전한 자산 운용처로 꼽히며 돈을 맡기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지만 은행들이 `쉴 새 없이` 금리를 내리면서 시중자금은 마침내 새 둥지를 찾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정기예금이 빠진다=국민, 우리, 하나, 조흥, 신한 등 주요 5개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8월말 156조 2,365억원에서 9월 25일 현재 156조 2,117억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올해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해왔던 정기예금이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지난 6월에는 5개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150조 9,693억원으로 그 전달의 146조8,492억원에서 2.8% 늘었고 7월 2.4%, 8월 1.1%로 증가 추세를 이어갔지만 이달 들어 마침내 정기예금의 증가세가 멈추게 된 것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 6월 정기예금 잔액이 31조537억원으로 5월에 비해 4.6% 이상 늘어나기도 했지만 이후 증가세가 완만해지다가 9월에는 31조7,100억원으로 지난달보다 3,359억원이 줄었다. 신한은행 역시 지난 7월 정기예금 잔액이 15조9,824억원으로 6월 대비 무려 9.2%까지 증가하기도 했지만 8월부터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해 9월 현재는 15조38억원에 그치고 있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조흥은행의 경우도 매달 1~3%씩 증가해오던 정기예금 잔액이 9월 현재까지 0.1%에도 못 미치는 소폭의 증가세를 기록하며 증가폭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예금금리 마지노선=정기예금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우선 금리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올해 거의 매달 금리를 내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초보다 최고 0.9%포인트나 떨어진 상태다. 이달 들어서도 은행들은 일제히 정기예금 금리를 0.1%포인트씩 내렸다. 이제 은행들의 정기예금은 4.0~4.3% 수준으로 3%대 진입도 멀지 않은 얘기가 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 실세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자금을 운용할 곳이 마땅치 않아 금리를 내릴 수 밖에 없다”며 “올 연말까지 금리가 떨어질 가능성은 있어도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9월 정기예금이 감소한 원인으로 은행권의 후순위채, 8월부터 활발하게 출시된 ELS펀드, 방카슈랑스가 시작되면서 거액 자금이 많이 몰린 연금상품에 시중 자금이 옮겨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연금의 경우 올해까지는 7년 이상 연금 계약을 유지하면 보험 차익에 대해 비과세혜택을 주는 것이 내년부터는 10년 이상으로 상향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은행권이 방카슈랑스에 발맞춰 내놓은 연금상품에 정기예금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의 다른 관계자는 “9월은 일반적으로 정기예금이 늘어나는 달이지만 최근 초저금리를 견디지 못한 소비자들이 결국 정기예금에서 빠져나가면서 예외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불확실한 경제 상황이 계속돼다 보니 수시로 돈을 뺄수 있는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의 증가세는 두드러지고 있다. 5개 은행의 MMDA 잔액은 지난 8월말 21조 8,485억원에서 9월 현재 22조 5,169억원으로 3.1%나 증가했다.
신한은행의 한상언 금융상품 팀장은“은행의 금리인하가 계속 되면서 고객들이 조금이라도 더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투자처로 자금을 옮기고 있다”며 “특히 주식이나 부동산 등 다른 투자 상품들에 정기예금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 금리인하 어디까지
예금금리는 어디까지 낮아질 것인가.
올해 시중 은행들이 앞다퉈 예금금리를 낮춰왔지만 올 연말까지 금리가 반등하기보다는 추가로 더 인하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시중 은행들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4.0~4.3% 수준. 올 초 최고 5.1%의 금리에서 9개월 만에 1% 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은 4%의 금리도 현재 시장금리 상황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1년 정기예금이 3%대로 떨어질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은행들의 정기예금과 비교되는 1년 만기 금융채 금리는 현재 4.15% 수준. 은행들은 예금보험료와 지급준비금을 감안해 정기예금 금리가 금융채 금리에 비해 0.275% 포인트 정도 낮아야 적절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계산대로라면 정기예금 금리는 이미 3% 후반에 와 있어야 정상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내부에서는 이미 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압력이 있다”며 “그러나 금리가 너무 급격하게 떨어지면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충격이 크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내리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임동석기자 freud@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