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아파트 50년, 주거 패러다임 바뀐다] 미래 주거문화 '5대 핵심 키워드'


1962년 현대적 의미의 첫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에는 연탄 아궁이가 있었다. 보일러의 개념이 없다 보니 겉은 아파트지만 난방은 재래식 온돌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마포아파트가 등장한후 5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 주거 문화는 경제 성장의 속도만큼 변화를 보였다. 소득의 증가는 주택의 규모 확대로 이어지고 1980년대 말 사회문제화되다시피 한 주택난은 수도권 일대에 대규모 계획 신도시를 비롯해 다가구주택 등 다양한 주거유형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주거문화는 2000년을 전후해 또다른 변화를 맞게 됐다. 공급과 수요가 어느정도 균형을 이루면서 주거에 대한 수요자의 욕구가 다양화하고 이에 따라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유형의 주택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미래의 주거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지난 50년간 우리 주거 문화가 단기간에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듯 미래의 주거 역시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다양한 기술 개발이 이전에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주거 역시 '기술'과 결합하면서 새롭게 진화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미래 주거는 사회의 다양성과 맞물려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래의주거문화를 특징지을 5개의 핵심 키워드를 제시해 본다.

● 그린(Green)- 친환경·低에너지에서 無에너지에 도전

2015년 새로운 친환경 아파트에 입주한 김모씨는 현관문을 열고 집에 올 때 마다 마냥 즐겁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리창에 아파트 단지내 발전 설비가 하루 동안 생산한 전력 생산량과 이를 외부에 판매해 얻을 수 있는 수익금이 반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당 월간 30여만원의 전력 판매 비용으로 아파트 관리비를 충당하고도 매달 10여만원 남짓한 돈을 관리사무실에서 보내준다.

친환경ㆍ저에너지 등 '그린(Green)'은 다양한 미래주거의 복잡한 트렌드 속에서 일관되게 핵심 가치가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는 곧 건설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이자 메가 트렌트다. 정부가 친환경 주택 건설을 위한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 만큼 건설업계는 이 기준을 충족해야 비로소 일반에게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

이 같은 그린 아파트는 바람과 태양열, 태양광, 지열 등을 이용한 에너지 소비 제로 아파트에 그치지 않는다. 대규모 발전소에서 전력을 끌어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주거지에서 자연을 이용한 에너지를 생산,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단지내 놀이터에서는 어린이들이 놀이기구를 이용할 때마다 신나는 동요가 스피커를 통해 나오지만 전기요금 걱정은 없다. 단지내 태양광 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력을 사용하는 까닭이다. 실내 내부 온도를 낮추거나 높이기 위해 필요한 에어컨 작동과 보일러 가동도 필요 없는 설비에 불과하다. 지하 깊숙한 공간에 설치한 지열 냉난방 설비로 연중 내내 무료로 찬 바람과 더운 바람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상 속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다 보니 그린 아파트의 시세는 주변 아파트보다 훨씬 높다. 건설업계가 그린아파트, 에너지 소비 제로 아파트 개발에 열을 올리는 까닭이다.'그린'은 특히 에너지 소비는 물론 주택 생산에 필요한 자재 등 건설 전분야에 친환경적 요소를 활용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 융합(Convergence)- 첨단IT기술과 융·복합…더 똑똑해 진다

불과 4~5년전만 해도 외부에서 집안의 가전ㆍ가스 등을 조절하는'원격제어'는 '미래'의 주택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상용화를 넘어 웬만한 새 아파트에는 기본 옵션으로 불릴 만큼 보편화됐다.

IT를 중심으로 한 첨단 기술과 주거의 결합이 과연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미 그 속도가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조차 쉽게 예측하기 힘든 만큼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전통의 주거와 첨단 기술의 융ㆍ복합(Convergence)은 거부할 수 없는 큰 흐름이란 것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아파트에 적용되는 IT기술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시장 규모는 올해 2조6,000억원 규모에서 오는 2015년에는 43조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IT융합을 통한 올해 전체 건축시장의 규모가 102조원, 2015년에는 227조원대로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IT의 총아로 불리는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경우 건설시장은 또 한번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 경기침체의 여파로 정체에 빠진 건설업계가 IT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설 업체들도 발 빠르게 기존 기술과 새로운 IT기술을 결합해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아파트를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가 본격적인 유비쿼터스 도시(U-City)로 조성하는 경기도 화성 동탄 신도시는 첨단 IT기술의 경연장이다. 광통신으로 연결된 IT기술을 활용해 주거, 교통, 교육 등 도시 전체 인프라가 통합 관리되는 미래 도시로 건설된다.

민간에서도 유비쿼터스 기술이 본격 도입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최첨단 주차정보시스템 'UPIS'을 비롯해 첨단 자동인식 현관문 개폐 시스템인 '유비쿼터스 키리스 시스템', 최첨단 보안시스템 '유비쿼터스 시큐리티 스마트 시스템' 등 다양한 첨단기술을 개발, 인천'검단 힐스테이트 4차'에 처음으로 적용했다.

롯데건설은 서울 평창동 롯데캐슬 로잔에 유비쿼터스 기상관측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입주민들은 집안에 설치된 모니터로 아파트 단지의 온도ㆍ습도ㆍ풍속ㆍ강수량 등 날씨 정보와 황사 농도, 오존 등 환경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도 대우건설의 '비상콜 시스템', 삼성물산의 '매직 미러' 등 주요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ITㆍ유비쿼터스를 융합한 첨단 주택기술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최근 건설업체들은 스마트폰 서비스를 도입해 아파트의 보안과 편의시설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SK건설은 경기도 수원에서 분양한 '수원 SK 스카이 뷰'에 지그비(ZigBee)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 지그비 칩을 스마트폰의 범용가입자인증장치(USIM) 카드에 탑재해 공동현관 출입은 물론 엘리베이터 자동호출, 지하 주차장 주차위치 확인, 위급 상황시 비상 콜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GS건설은'일산 식사자이'에 스마트폰 서비스를 도입했다. 스마트폰에 아파트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연결, 외부에서 집안의 조명ㆍ온도ㆍ가스ㆍ환기ㆍ에어컨은 물론 커튼과 욕조까지 제어할 수 있다.

아파트에 첨단 정보통신(IT)기술을 융합한'유비쿼터스(Ubiquitous) 아파트'가 새로운 주거 트렌드로 잡아 가고 있다. 지하주차장에 진입할 때부터 시작되는 최첨단 IT기술은 주차장 승강기 자동호출, 전자열쇠인'U-key', CCTV 안전모니터링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외출할 때는 보안 스위치만 눌러주면 보안설정, 일괄소등, 조명차단, 보일러 및 가스차단 시설이 스스로 작동한다. 과거에는 상상 속으로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파트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 소형·다목적(Small&Multi Use)- 일·여가 한 곳에서…독신·실버용 소형주택 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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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피데스개발 등 국내외 각종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2020년대 이후 미래 주택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가장 많이 강조한 키워드는 '다목적'과 '소형'이다

많은 일과 여가 생활을 가정 내에서 소화해야 하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주택 내부의 홈오피스 시스템이 크게 발달되고, 독신ㆍ실버 가구가 증가하면서 주택의 크기는 점차 작아진다.

인구 통계상 이는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소형주택시장 동향 및 전망' 보고서에서 현재 전체의 35.4%인 소형가구(1~2인 가구) 비중이 2030년이면 44.4%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와 10~20년 시차를 두고 비슷한 인구구조 변화를 겪은 일본은 이미 1인 가구가 총 가구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고, 이 여파로 콤팩트 맨션 등 소형주택시장이 크게 활성화했다.

이에 따라 국내 건설사들도 '다목적 소형 주택'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처음으로 소형아파트 브랜드 '캐슬 루미니' 브랜드를 출시했으며 조만간 강남권에 첫 공급을 계획하고 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빌트인 시스템을 특화시켜 30㎡ 정도의 작은 공간을 2배 이상으로 활용하는 멀티미디어 주택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대우건설, 동부건설, 금호건설 등도 소형 주택 사업 전략을 조만간 구체화할 계획이다.

● 개성(Individuality)- 개인의 취향 반영 나만의 맞춤형 아파트 실현

결혼한 지 10년 만에 새집을 분양받은 서혜원 씨는 맘에 꼭 드는 집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방은 3개면 충분할 테고 친구들을 불러 저녁 대접하는 걸 좋아하니 부엌이랑 거실의 기능을 합쳐 가능하면 넓게 하자"

밤에 일을 하는 그녀는 이른 아침 들어오는 밝은 햇살이 아침 잠을 깨우는 게 싫다. "침실 창문은 서쪽으로 작게 두고 남편이 키가 크니깐 천정고를 20cm 정도 높여 볼까"

톡톡, 몇 번의 클릭으로 3개의 방, 널찍한 부엌 겸 거실, 통유리가 설치돼 밖이 내다보이는 욕실로 구성된 평면을 만들었다. 앞으로 1년, 그녀가 만든 평면을 기초로 해 그녀의 집이 만들어진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자신의 개성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앞으로는 개개인이 지닌 각양각색의 취향을 만족시켜줄 '맞춤형 아파트'의 시대가 올 것으로 보인다.

맞춤형 공동주택의 형태는 주택 디자인의 자유도에 좀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외국에서 이미 소규모로 시도되고 있다.

일본의 실험주택 '넥스트21'은 총 18가구 규모의 작은 공동주택을 지으면서 건축전문가, 환경, 구조전문가 수십 명이 참여했다. 설계 초기부터 거주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홈파티를 할 수 있는 집, 정원이 있는 집 등 '나만의 집'을 공동주택을 통해 실현했다.

대단지 아파트 위주로 공급되는 국내에서는 아직 '맞춤형 주택'에 대한 관심은 초기 단계다. 다양한 디자인과 평면을 적용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건축비 상승을 가져오기 때문에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현재 시점에서는 업체 입장에서도 섣불리 시도할 상황이 아니다. .

하지만 고급 주택과 소규모 빌라, 고급 타운하우스 등을 시작으로 소비자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려는 시도가 국내에서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

신동철 경원대학교 건축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건축 실력으로 못 만들어낼 건물은 없고 규제완화, 수요자의 요구, 상상의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진화된 형태의 공동주택이 나올 수 있다"며 "다만 경제성, 차별성 등 집이 가지는 가치 중에서 소비자들이 무엇을 추구하느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세컨드 하우스(Second House)- "도심 떠나 외곽으로" 주말용 주택 보편화

2025년 서울, 지가 상승과 도심 과밀화는 직장 주변 집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한적한 녹지에 이동 가능한 집을 지어 옮겨 다니며 사는 게 유행이 됐다.

그냥 상상뿐일까. 단독주택을 찍어내는 '모듈 하우스' 같은 공법은 이미 SK건설의 자회사인 SK D&D가 상용화해 실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아파트 시장이 침체하는 동안 제2의 집, 즉 '세컨드 하우스' 혁명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주택시장에서 세컨드 하우스가 새로운 주력상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인구 비율이 점차 노령화하고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런 유형의 주택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산 MCM홀딩스 이사는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평일은 도심에 위치한 집에서 보내고 주말은 따로 나와 보낼 수 있는 집이 보편화하고 있다" 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세컨드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최근 높은 청약률로 관심을 모았던판교신도시 고급 타운하우스 '월든힐스' 가 그런 추세를 엿보게 하는 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경기본부의 박형진 차장은 "도심 한복판에 '세컨드하우스' 의 개념을 도입한 게 청약성공의 비결" 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총 3개 블록으로 구성된 이 단지는 자신만의 개인정원을 꾸리거나 공용 마당의 개념을 도입해 휴양주택의 이미지를 심었다.

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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