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체수의계약 단계 폐지"특혜등 부작용 크다" 수계품목 점차 줄여
정부가 단체수의계약제도(단체수계) 폐지를 재추진하려는 것은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기업 경영환경 때문이다.
산업경제 시대에 중소기업을 인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칸막이식 정책이 개방화와 치열한 경쟁으로 요약되는 글로벌 경영체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제도 존속을 요구하는 중소기업들의 강한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어서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 단체수의계약 폐지 재추진 배경
단체수계가 도입된 이유는 중소기업의 안정적 판로를 확보해주기 위해서다. 도입 당시의 명분도 대기업이 업종 확장에 한창 열을 올리는 틈바구니에 끼인 약자(중소기업)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명분이 통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무엇보다 통상마찰 유발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단체수계는 매년 정부나 투자기관이 의무적으로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하도록 강제한 제도여서 국가간 보조금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9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소기업들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카르텔일괄정리법을 제정해 단체수계 품목수를 단계적으로 줄이려 했던 이유도 이 제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규정하는 중핵카르텔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글로벌 경쟁체제 아래서 통상마찰을 불러일으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을 우려가 크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제도 운용이 각종 특혜와 이권으로 뒤범벅돼 비정상적으로 이뤄진 점도 폐지 배경의 하나.
중소기업들은 관련 조합을 통해 물량배정을 받는 과정에서 연고배정, 편중배정, 진입장벽 구축, 신규가입 제한 등 불공정행위로 이전투구식 싸움을 벌여왔다. 이와 함께 정부가 판로를 담보해줌으로써 중소기업간 기술개발 경쟁을 제한하고 구매자 입장인 정부의 예산낭비를 초래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98년 공정위원장으로 카르텔일괄정리법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점도 폐지론이 추진력을 얻게 된 배경이다.
지난달 15일 취임 직후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한 전 부총리는 "단체수계가 분명 잘못된 제도"라고 못박았다.
▲ 단계적으로 폐지
전 부총리는 그러나 "이 제도를 당장은 폐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폐지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계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현재 154개인 단체수계 품목을 내년부터 오는 2005년까지 매년 52개씩 줄여가는 방법과 지난해 만든 제도개선안을 대폭 강화해 탈락 업체수를 늘려 자연 감소시키는 방안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98년 제정된 카르텔일괄정리법을 개정해 품목수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방법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방식이 되든 제도가 점진적으로 폐지되는 게 확실시된다.
▲ 걸림돌은 없나
경제 제한적인 단체수계를 폐지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여느 때보다 굳어보인다. 전 부총리는 자신이 만든 제도가 중소기업들의 조직적 반발에 밀려 중단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공정위원장 시절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경제수장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당시보다는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됐다.
이남기 공정위원장도 9일 "정부는 카르텔을 조장하는 사례를 억제하기 위해 시책을 추진해나가겠다"고 강조해 전 부총리를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올해가 정권 말기인데다 양대선거가 앞에 버티고 있는 점이 부담이다.
중소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할 경우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규정을 강화한 개선안도 올해 첫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제도 자체를 폐지하겠다는 정부에는 거꾸로 올가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단체수의계약제도 개선 경위>
▲ 65년 단체수의계약제도 신설
▲ 99년 2월5일 카르텔일괄정리법 제정, 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 매년 20%씩 단계적으로 축소하도록 법률에 명시
▲ 2000년 12월23일 중소기업진흥 및 제품구매촉진법 제정, 98년 지정된 구매대상물품수의 60% 이내로 지정이 가능하도록 법에 규정(카르텔일괄정리법이 사실상 무효화됨)
▲ 2001년 중소기업청이 단체수계 품목수를 154개로 지정
▲ 2002년 단체수계 폐지 재추진
자료:공정거래위원회
박동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