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업→은행→기업 “불실악순환”/제일은 신용추락으로 본 원인·파장

◎부도 떠안은 금융기관 외환조달 등 타격/수출입 신용장 발급해도 외국사서 “사절”부실은행이 거래기업의 부실을 악화시키거나 멀쩡한 거래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마저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부실에 따른 은행부실이 더이상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심화돼 기업과 은행이 상승적으로 부실을 가속시키는 악순환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제를 총체적 난국에 빠뜨릴 수 있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정부, 은행, 기업은 서로간에 책임공방만 벌이며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간 합병, 대규모 감원, 산업구조조정 등 어렵지만 가야할 길을 애써 외면한채 한은특융, 구제금융 등 결국 국민부담으로 돌아갈 손쉬운 대책만 거론하고 있다. 먼저 제일은행은 재벌그룹의 연쇄부도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자기자본규모가 1조8천4백60억원(96년말)인 제일은행은 우성그룹에 2천3백21억원, 한보에 1조7백83억원, 기아에 7천6억원이 각각 물려있다. 올 상반기에는 3천5백6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제일은행의 부실화는 거래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제일은행부실의 주범이지만 제일은행이 주거래은행이어서 거꾸로 손해보는 측면도 적지않다. 기아측은 제일은행의 외환조달 애로때문에 자동차 수출대금을 제때 회수하지 못하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기아는 한달에 보통 4천만달러어치의 자동차를 수입선 거래은행이 일정기간이후(통상 1백80일) 지급을 보증하는 유산스(외상) 신용장(LC) 방식으로 수출해왔다. 거래은행은 이를 담보로 외화자금을 조달해 기아에 지급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한보사태로 신용이 추락한 제일은행은 외상 LC대금을 조달할 능력이 벅찬 상황이 됐다. 외화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없는 은행이 주거래은행이었다면 기아자동차는 정상적인 수출을 하고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기아의 주거래은행이 제일은행이 아닌 건실한 다른 은행이었다면 기아가 부도유예협약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제일은행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사는 현재 BBB마이너인 제일은행의 신용등급을 「정부의 가시적인 지원」이 없을 경우 BB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신용등급이 BB인 금융기관이 발행한 장기채권(3년이상)을 사는 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로 분류된다.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제일은행이 앞으로는 외화영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는 경고나 다름없다. 안정적인 외자를 조달할 수도 없고 조달해도 정크본드격으로 분류돼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 거래기업의 외환거래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수출입거래에 필수적인 LC를 제일은행에서 발급받을 경우 외국의 거래선이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대출거래도 마찬가지다. 제일은행은 상반기에 이미 3천5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규모에 따라 자기자본규모가 축소된다. 동일계열에 대해 자기자본의 45%까지 여신을 제한한 동일계열여신한도제가 도입돼 여신여력이 감소되고 초과여신은 해소해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같은 부실의 악순환을 끊으려는 절박함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제일은행은 임금 10∼30% 반납등을 통해 3년간 5천1백25억원의 자구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발표했다. 보수적이고 안정된 대표직종으로 평가되던 은행원의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발상일지 모르지만 재경원측 평가는 언발에 오줌누는 격이라는 것이다. 재경원은 적정한 자구노력이 전제되면 한은특융 등 다양한 지원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은행부실화의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할 뿐 궁극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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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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