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호(號)가 돛을 올린 지 25일로 6개월째다. 지금까지의 항로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암초투성이였다. 연초부터 두산중공업을 시작으로 화산처럼 분출되기 시작한 사회갈등을 시작으로 북핵위기, 이라크전, 금융시장 불안, 새만금 사업 중단 논란, 전교조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거부,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 향응 파문에 이르기까지 평온한 날이 거의 없었다.
이 암초들은 국민생활과 삶의 질과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에 반드시 깔끔하게 마무리됐어야 옳다. 하지만 해결 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는 회의적이다. 산적한 문제를 풀기는커녕 전문성 부족과 아마추어리즘으로 갈등과 불신만 키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점수로 따지면 낙제 수준이다. 국민 개인이나 가정, 기업들은 노무현 호가 가는 길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리더십 붕괴 = 선장을 맡은 노 대통령은 이 암초들을 시스템으로 풀어가려고 했다. 자신은 현안에서 손을 떼고 에너지나 고령화와 같은 미래 문제에 대해서만 생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책임총리제가 강조됐고,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겠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선장실(청와대)은 완전히 뜯어고쳐졌다. 정부 부처를 담당하는 수석비서관제가 폐지됐고 정책실이 신설됐다. 비서실장의 역할은 정무범위정도로 대폭 축소됐다.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한 조치들이었다. 하지만 어설프게 만들어진 시스템은 고장이 잦았다. 게다가 선장은 조타수 역할을 하기보다는 직접 갑판에 내려와 선원들과 함께 직접 노젓기를 좋아했다. 높은 곳에서 항로를 살피고 암초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 가를 고민해야 할 선장이 선원과 섞여 있다보니 배는 좌충우돌 앞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선원중 일부는 선장이 안보는 틈을 타 밤에 전화도 받지 않고, 새만금 시찰을 이유로 가족들과 유람을 하고 오기도 했다. 2만원이상 접대는 받지 말라고 했는데 룸싸롱에서 양주를 마시고 선물까지 챙겨오는 선원도 있었다. 선장의 리더십은 이렇게 무너졌다.
◇커저가는 실망감= 리더십을 세우는 데 실패한 노무현 정부가 6개월동안 거둔 성적은 낙제수준이다. 이 같은 사실은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문화일보와 테일러 넬슨 소프레스(TNT)의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하고 있다는 대답은 전체 응답자의 37.7%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61.5%는 국정운영을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중앙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도 대동소이했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5.3%가 노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한다고 답했다.
◇`갈팡질팡`경제정책= 노무현호의 6개월 성적이 나쁘게 나오는 이유는 국민들이 바라는 경제와 민생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기보다는 오히려 얽히게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잦은 말바꾸기와 어설프게 짜여진 시스템은 국정운영의 혼선을 부채질했다. 특히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 투톱으로 짜여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갈길 바쁜 경제의 발목을 잡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법인세 인하를 둘러싼 대통령과 부총리간 이견, 부총리와 정책실장의 의견 대립은 정부내 정책 혼선이 극에 달한 대표적 사례다. 노 대통령은 취임초 김진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법인세를 낮추겠다”고 하자 “조세형평을 후퇴시키게 된다”며 김 부총리의 말을 일축했다. 그러더니 지난 7월에는 노대통령이 “다른 국가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마당이라면 1%라도 유리하게 해줘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뀌고 김부총리는 “세수결손이 우려돼 법인세 인하를 반대한다”는 것으로 거꾸로 됐다. 이러다 보니 아래로 내려와 부처간 갈등으로 인한 혼선은 더욱 심하다. 출자총액규제 개편,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 재산세ㆍ종합토지세등 부동산 보유과세 강화, 스크린쿼터문제를 놓고서는 부처간 대립만 심화되는 모습이다.
◇학습기간은 끝났다= 리더십붕괴로 시스템은 작동이 안되고 정책은 표류하는 양상은 지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최근 서울경제가 창간43주년을 맞아 가진 한 대담에 참석해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몇 달이 지났어도 정부의 일관된 정책노선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이제부터는 선명한 정책노선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6개월이면 기초쌓기에 필요한 학습기간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노무현호가 순항하려면 리더십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그래야 시스템이 작동하고 정책의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다.
<박동석기자 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