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弱달러, 세계질서를 바꾼다] <2> 기축통화 바뀔수 있나

사우디 오일결제 '달러' 포기 여부가 관건<br>"달러론 한계 도달" 인식속 기축통화 다변화 움직임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회고록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석유전쟁으로 표현했다. 여기에는 단순히 원유확보 외에 미국의 달러패권 유지라는 의도도 숨겨져 있었다. 이라크가 오일 결제를 유로화로 변경했고 기축통화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이 이를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1944년 브레턴우즈체제를 바탕으로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한 달러화가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물론 달러 패권시대 종식은 새삼스러운 이슈가 아니다. 85년 플라자합의 등 과거에 몇 차례 고비를 경험했고 그때마다 달러 패권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다. 하지만 현재의 달러 위기는 과거와 상황이 사뭇 다르다. 유로화가 세를 키워가고 있고 오일 머니를 비롯해 국제자본들이 하나 둘 통화 다변화에 나서는 등 분위기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표한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축통화 열쇠는 오일 머니가 쥐고 있다”며 “산유국이 현재의 달러 위주 오일 결제를 어느 통화로, 어느 정도 바꿔나가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달러 패권, 100년 지속될까=미국의 한 통화학자는 최근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100년은 더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적이 있다. 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100년은 되지 않을 것”이라며 “현 상태가 지속되면 20~30년이면 달러화의 위상이 크게 달라져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달러화는 시기는 언제가 될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기축통화로서 역할을 하기에 일정한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많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전세계 시장에서 미국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다. 기축통화 역할은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도 미국경제의 비중 하락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는 우리뿐 아니라 다른 국가 전문가들도 의견을 같이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본격적인 출발은 산유국, 특히 사우디가 오일 결제를 유로로 바꾸고 달러 페그제를 포기하는 순간부터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엔ㆍ위안화, 기축통화 승격될까=그렇다면 달러화의 뒤를 이를 기축통화는 누가될까. 우선 엔화와 위안화는 그 대상이 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김필헌 연구위원은 “기축통화는 안전성이 우선인데 이점에서 급격한 중국경제 변동폭 등을 고려해볼 때 위안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엔화 역시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엔화가 지배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기축통화로 성장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축통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제력 못지않게 정치적 위상을 갖춰야 되는데 동아시아 국가들이 일본 통화 지배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력한 후보인 유로화 역시 기축통화로 위상이 승격해도 달러화처럼 강력한 패권을 누리기는 힘들 것이다. 유로는 그저 달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이다.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기축통화는 한가지 통화의 독점시대에서 여러 통화의 과점시대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며 “한개의 통화가 전세계 경제를 커버 하기에는 현재 세계 경제 규모가 너무 커졌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로화가 기축통화로 떠오를 수 있어도 완전한 달러 대체는 안될 것 같다”며 “달러ㆍ유로ㆍ엔 등의 현 순위가 유로ㆍ달러ㆍ엔으로 바뀌고 1ㆍ2위 간의 격차는 현재보다 줄어드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달러 위상 약화, 원화의 운명은=달러 위상이 약화되는 가운데 원ㆍ달러 약세의 현재 흐름이 지속될지도 관심이다. 원화의 경우 다른 아시아국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상 속도가 가파르게 이뤄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달러 약세 흐름 속에서 앞으로는 엔화와 위안화의 절상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는 점을 제기하고 있다. 원화의 경우 내부적으로 단기외채라는 특이적 요건 때문에 절상되고 있지만 경상수지가 균형 수준을 이루는 등 절하 요인이 상존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엔화와 위안화는 원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절상됐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위안화ㆍ원화가 달러약세 흐름 속에서 가파른 절상을 점치는 해석도 적지않다. 엔화의 경우 엔캐리 트레이드로 인해 점진적 절상이 불가피하고 결국 위안화와 원화가 그 타깃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표한영 연구위원은 “우리 입장에서는 기축통화가 달러에서 유로로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변화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소용돌이 치면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한국의 미국 경제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기축통화 위상 변경은 우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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