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평형 아파트, 3억원 이하로 매물 내놓지 맙시다’
경기도 용인시 D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부녀회 명의로 걸린 게시문이다. 이 아파트 부녀회는 최근 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한 뒤 인근 중개업소에 ‘3억원 이하로 팔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부녀회 등이 가격을 담합하는 불공정 행위가 강남ㆍ분당ㆍ용인 등 강남권에서 최근에는 은평구, 일산신도시 등 강북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 일부 기획부동산까지 가세해 아파트 값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등 작전 세력에 의한 가격 담합과 조정이 사회 문제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등 관련당국은 이를 규제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에 따른 대책을 내놓지 못 하고 있다. 관료들조차도 ‘치마바람’에 속수무책인 형국이다.
◇확산되는 가격 담합 = 재경부의 중간 관료 A씨. 강남 모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최근 부인의 모습에 당혹스러웠다. 그는 “하루는 집 사람이 반상회에 갖다 오더니 격앙돼 있더라구요. 다른 집 아줌마들이 집 값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직간접적으로 부동산 정책에 관여하고 있지만, 아줌마들의 담합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은평구의 한 아파트단지 반상회. 이 곳에서는 일정 가격 이하로는 아파트 매물을 내놓지 말자는 의견이 쏟아졌다. 한 참석자는 “강남ㆍ분당ㆍ일산처럼 아파트 가격을 관리하자는 격앙된 의견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대한공인중개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부녀회로부터 직ㆍ간접적인 압력을 받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개업소가 수도권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며 “인터넷을 통해 여러 지역의 가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대전 등 지방으로까지 번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책 없는 행정당국 =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2년 부녀회 가격 담합이 문제가 되자 이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결론은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사업자 이기 때문에 개인을 규제할 수 없다는 것. 법이 바뀌지 않는 한 가격담합을 이유로 부녀회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게 공정위의 현재 입장이다.
소비자보호 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의 입장도 비슷하다. 재경부 한 관계자는 “가격 담합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판단 아래 내부 논의를 해봤으나 소관 법률인 소비자보호법 등으로는 어떤 대책을 내놓기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부동산 대책의 주무 부처인 건설교통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기획부동산 등 부동산 시장의 작전 세력에 대해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담합 사실을 밝히는 게 쉽지 않은 데다 이를 규제할 마땅한 법 조항도 없기 때문이다. 관료들 조차도 아줌마들의 담합 앞에선 냉가슴만 앓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