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석유 난로를 판다고 하면 ‘사기 친다’고 해요. 요즘 그런 거 쓰는 데가 있냐면서. 하지만 세계는 넓고 시장은 무한합니다. 시장을 찾고 어떻게 공략하는 지가 중요하지요” 언뜻 사양 산업으로 불려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듯한 석유난로를 팔아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한 파세코의 유병진(65) 회장은 진정한 세일즈맨이다. 석유난로가 열사의 땅인 중동에서까지 인기 상품이라니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밍크코트를 판 것과 진배없다 할 만하기 때문이다. 파세코의 시작은 중장년 층 가슴 한 켠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석유풍로’의 ‘심지’를 만들던 지난 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정부가 등유 소비를 위해 석유풍로를 일본에서 대거 수입하던 때. 신우직물이란 간판을 걸고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들어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아파트 보급 확산 등으로 석유난로 수요가 시들해 버린 것. 이는 시선을 밖으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해외 시장 수요가 만만치 않음을 판단하고,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석유난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선풍기ㆍ가스버너 등 소형가전에도 손을 댔다. 변화의 중심에서 감행한 도전이었다. 미국에 가스버너를 수출하는 등 소형가전이 자리를 잡아가던 지난 94년. 다시 한번 위기가 닥쳤다. 대기업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하던 소형가전의 거래를 중단해 버린 것. 물량이 전체 매출의 40%나 됐기에 심각했다. 이 때 유 회장은 ‘석유난로로 미국 시장을 뚫겠다’는 카드를 꺼냈다. 미국의 경우 집이 커 부분 난방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 결국 바이어와 700만 달러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안전규격(UL) 승인이라는 벽을 뚫어야 했다. 거의 6개월이 걸려 2번의 실패 끝에 UL 승인을 얻는 데 성공했다. 유 회장은 “그간 설비 투자하는 데 들어간 돈은 물론이거니와 납기를 맞추지 못해 첫 수출이 날라갈 판이었다”며 “UL 통과 후 수출 콘테이너가 나갈 때는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 때문인지 유 회장은 끈기와 도전정신, 냉철한 판단력을 최고 덕목으로 꼽는다. 중동 지역도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다는 데 힌트를 얻어 뛰어든 시장. 90년대부터 수출되기 시작해 2000년 들어서는 일본 제품을 제쳤다. 이라크 후세인이 잡혔던 은신처에서 파세코 난로가 발견되면서 국내외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현지에서 명품 대접을 받고 있음을 확인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현재 석유난로는 유럽 등 전세계 35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파세코란 사명도 석유난로에 대한 내수를 접고 수출로 방향을 틀면서 지난 99년에 도입했다. 완벽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전기업이란 의미(Perfect product, Ace service, Smart Electronic Company). 지난 2000년에 진출한 빌트인 주방 가전도 매출의 50%를 담당한다. 식기세척기ㆍ김치냉장고ㆍ비데 등으로 사업을 넓혔다. 이 분야에서도 중소기업 가운데 품질과 기술력에서 손꼽을 만한 업체로 성장했다. 유 회장은 “어려울 때마다 역경을 딛고 도전해 왔다”며 “종합가전 기업으로서 품질에서 최고라는 평가가 나오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