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장시간 근로 개혁의 출발점


최근 고용노동부는 올 들어 고용동향을 분석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장장 25쪽에 이르는,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보고서였다. 보고서를 작성한 고용부의 한 국장은 "전날 저녁식사도 거르고 밤 11시까지 작업했다"고 고백했다. 고생이 많았을 텐데 국장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덤덤한 얼굴이었다.

정부는 수년째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장시간 근로문화의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창조경제 시대에 무턱대고 오래 일하는 문화로는 국가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로시간 줄이기를 추진하는 주무 부처 고용부, 그중에서도 주무 부서인 임금근로시간개혁추진단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오래 일하는 부서 중 하나다. 추진단의 한 공무원은 "지난해 한창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법안 이슈가 터졌을 때는 팀원 대부분이 매일 밤 11시가 넘어 퇴근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기자가 주말에 기사를 작성하는 도중 자료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고용부 담당 사무실에 전화하자 마침 출근한 공무원이 있어 자료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토요일인데 어떻게 출근했냐"고 묻자 "일이 많으면 주말에도 나와야죠"라는 덤덤한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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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일이 터지면 밤에든 휴일에든 일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얼핏 들으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일은 언제든 터진다. 중요한 일이 터졌을 때마다 야근ㆍ휴일근무를 해야 한다면 근로시간 줄이기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로시간 줄이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가장 선진적인 근무 시스템을 갖췄다는 대기업도 야근과 휴일근무가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근로시간을 줄이려면 갑자기 써야 할 보고서가 생겨도 납품기일이 앞당겨져도 근로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업무분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오래 일하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는 뿌리 깊은 근로 의식ㆍ문화도 바꿔야 한다.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부터 몸소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은 민간기업보다는 근로시간 줄이기 실험에 따른 위험부담에서 자유롭다. 무엇보다 장시간 근로 개혁을 외치는 정부부터 모범을 보여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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