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에서 배심원단 대표를 맡은 벨빈 호건(사진)의 비행 여부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향후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최근 언론보도 등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호건은 배심원장으로서 배심원 평결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만일 법원이 호건의 행동을 위법이라고 보고 배심원 평결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내릴 경우 1심 최종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그동안 논란이 제기된 호건의 비행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보기술(IT) 전문 블로그 안드로이드피트는 호건이 보유한 '비디오 정보 기록과 저장에 관한 방법 및 장치'에 대한 특허가 애플 제품에 사용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평결 대상인 제품과 관련된 특허를 보유한 사람이 배심원장을 맡은 만큼 편향된 평결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호건은 재판 과정에서 특허와 관련된 견해를 다른 사람과 논의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은 배심원들이 지침과 법정에 제출된 자료 외에 개인적인 경험이나 법률지식을 근거로 평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재판장인 루시 고 판사도 이 같은 사실을 배심원들에게 요구했으며 호건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지만 실제로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시게이트와 7년 동안 소송을 벌여온 사실을 배심원장 심문선서에서 밝히지 않은 점이다. 호건은 지난 1980년대 하드디스크 전문업체 시게이트에 취직했고 1990년 해고됐다. 해고 이후 회사와 부동산담보대출 비용 등 금전적인 문제로 맞소송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개인파산을 하기도 했다. 시게이트와 관련된 개인적인 감정으로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소송 배심원 평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애플은 호건의 비행이 재판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애플은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호건의 발언은 공정했으며 편향되지 않았다(balanced, not biased)"며 "시게이트와의 과거 소송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삼성전자가 이를 화제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가 시게이트와 관련된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건이 이에 대해 밝힐 의무가 없었으며 이를 근거로 새로운 재판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단 법원이 배심원 평결에 영향을 미친 호건의 비행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삼성전자는 향후 소송 결과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배상액 산정에서 유리해지는 것은 물론 결과에 따라서는 배심원 평결 자체가 뒤집힐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배심원장의 비행 여부만으로 배심원단의 결정이 뒤집히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넷은 브라이언 러브 산타클라라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미국 법은 변호사들이 배심원방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비행 주장'만으로 배심원단의 결정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