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보 30대그룹사 '하반기 경제' 설문조사"투자 억제·축소" 64%… 불안감 여전
「아직도 불안한 구석이 너무 많다.」
최근 정부가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10조원에 달하는 채권인수펀드를 조성하기로 하는 등 마비상태에 있는 금융시스템의 복원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기업들의 절반 가량은 위기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정책이 과연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도 크다. 채권시가평가, 금융구조조정, 부실기업 워크아웃 우려감 등 기업들을 둘러싼 각종 현안들이 한결같이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들이 아니라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서울경제가 3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 및 주요 계열사를 대상으로 「하반기 경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자금시장 사정이 호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경기악화 우려따라 투자도 주춤=하반기 경기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 자세도 보수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전체 응답업체의 35.5%가 「기존 설비를 유지 보수하는 수준으로 억제하겠다」고 대답했으며 29.0%는 「지난해 하반기보다 투자규모를 줄일 계획」이라고 답한 것이 단적인 예. 결국 전체 기업의 3분의2가 「돈 들어가는 일은 벌이지 않겠다」는 수비적인 자세로 돌아선 셈이다.
나머지 19.4%의 기업들도 「시중 자금사정 등 금융시장 환경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응답, 확실한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자세는 표면적으로 정부의 「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이라는 커다란 틀이 아직은 기업들의 피부에 와닿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내수부진과 경쟁가열에 따른 채산성 악화 등으로 기업의 미래를 안심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사대상 업체의 16.1%는 「지난해 수준보다 늘릴 계획」이라고 대답,업종별로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자금시장 지표에는 긍정적=기업들이 경영여건 불안정과 이에 따른 경기악화 전망에 근거, 투자를 줄이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자금시장 지표에 대해서는 의외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업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금리인상과 관련, 41.9%는 오는 8~10월께 단기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38.7%는 내년 이후에나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54.8%는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70~1,000원에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원화약세를 유발시킬 만한 요소가 하반기들어 크게 줄어들 것이란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현재 기업들의 자금경색은 금융시스템이 회복되면 풀릴 것이라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는 못믿겠다=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의지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정부의 경제개혁에 대한 성과를 묻는 항목에서 「매우 잘했다」(3.2%) 또는 「대체로 잘했다」(35.5%)라는 응답은 전체의 절반을 넘지 못한 반면 「그저그렇다」(45.2%), 「대체로 잘 못하고 있다」(16.1%)는 응답은 과반수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정책과 연결된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시장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절반 이상인 51.6%의 기업들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특히 「시장 기능을 약화시켰다」는 응답도 22.6%에 달해 정책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부정적인 시각은 또 정부의 경제운용 역점사항과 관련, 「지속적인 구조개혁」(51.6%)을 요구하는 것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김형기기자 KKIM@SED.CO.KR 한운식기자 WOOLSEY@SED.CO.KR 입력시간 2000/07/0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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