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지원제도는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내 그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신용회복지원제도가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워 갱생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빚을 졌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갚아야 하는게 원칙이지요. 그러나 지난달 말부터 작업을 하고 있는 태스크 포스팀이 금명간 보다 개선된 회복방안을 내놓을 것입니다. 그러면 신용을 회복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신용회복지원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신동혁 전국은행연합회장은 “신용불량자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신용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용은 자신이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회장은 “앞으로 금융회사들이 앞장서 청소년들에 대한 신용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얼마전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설문을 보니 신용회복절차가 너무 까다롭다는 대목이 눈에 띄던데요.
▲신용회복지원제도는 상환능력이 인정되는 신용불량자의 채무를 조정해 경제적으로 회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본래의 도입취지와는 다르게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초기에는 신청요건을 다소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신용회복지원제도가 좀 더 실효성있는 제도로 정착될 수 있도록 지난 달 말부터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해 현행 제도 전반에 걸쳐 검토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서류간소화 등 신용회복지원절차에 대한 개선이 이뤄져 일반인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개인워크아웃 혜택을 지나치게 늘리면 채무자의 모럴 해저드가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신용갱생도 지원하면서 모럴 해저드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요.
▲빚 독촉을 받고 있는 다중채무자들이 `신용회복지원을 받기 위해 일부러 빚을 갚지 않고 버틴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악의적인 채무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의로 연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일부러 빚을 갚지 않으면 대출금 연체로 고금리의 연체이자를 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용불량자로 등록돼 경제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모두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서는 심사과정에서 채무자의 신청자격 요건, 채권금융기관의 의견 등을 심사해 신용회복지원이 필요한 채무자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직접 출장조사도 실시하고 있으므로 모럴 해저드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은행들의 경영이 다시 어려워지고 있고, 새로운 수익원창출에도 많은 애로가 많습니다. 바람직한 은행의 성장전략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 은행산업은 외환위기후 제도측면에서의 다양한 금융개혁과 자체적으로 과감한 구조조정을 한 결과 점차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은행산업이 더 발전하려면 정보통신기술과의 접목, 고객수요의 다양화 등 환경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은행의 성장전략이 대기업중심의 자금중개, 이자수익 중심의 영업확대 등에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금융겸업화를 기반으로 개인에 대한 자산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제고하고 비이자수익과 수수료수익 등 부수업무 중심의 사업역량과 브로커적 중개업무를 강화하는 등 종합금융서비스(one-stop financial services)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SK글로벌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돼 금융시장도 안정을 회복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을만하면 또다시 대형사고가 터지는 등 불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의 여파로 최근 채권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임에 따라 기관투자가로서 또한 채권거래 중개기관으로서 은행권이 큰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도 채권시장이 조기에 안정되지 않을 경우 금융시장 전체 더 나아가 경제 전반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 카드채 등 금융시장안정책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원칙을 깬 조치라는 지적도 있지만 일단 시장을 살리는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조흥은행 매각 등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관치금융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은행과의 관계에 있어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정부는 은행들이 기업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은행경영에 대해 규제를 좀 더 낮추고 공정한 시장관리자로서의 감독은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은행업의 공익성은 어느 정도 유지해야겠지만 개별적인 영업은 시장원리에 맡김으로써 은행이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적정수준의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지요. 정부는 또 은행들이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서 고객과 주주 더 나아가 국민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시장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은행의 수익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예금보험료, 지급준비금 등 은행이 지고 있는 정책성 비용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카드사고 등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졌습니다. 금융사고를 근원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은 없겠습니까.
▲폰뱅킹을 통한 거액의 불법인출 등 최근에 일어난 금융사고로 은행들간에 윤리경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글로벌경쟁시대를 맞아 윤리경영은 단순한 이미지 형성 차원이 아닌 기업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은행들은 투명한 경영체제를 구축하고 국제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기업윤리성 평가방안을 도입하는 등 윤리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도 이와 관련된 규범과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다만 법과 제도에 의해 윤리경영을 강제할 경우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영 활동을 구속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실천하도록 제도적으로 유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은행연합회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조직활성화와 회원은행에 대한 서비스향상방안이 궁금합니다.
▲은행연합회의 일차적인 역할은 21개 사원은행들의 이해가 걸린 각종 금융문제에 관해 상호간 최대한의 업무협조를 이끌어 냄으로써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원은행들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사원은행의 공동이익을 증진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은행산업이 건전 경영의 토대 위에서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갖춘 전략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추진할 생각입니다. 이러한 방향 아래 사원은행의 관심사와 현안사항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전개하며, 금융기관들이 신용위험관리를 강화하여 자산건전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으로서 신용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겠습니다. 또 우리 국민 모두가 보다 편리하게 은행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은행서비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홍보를 실시함과 동시에 은행 거래 시 필요한 정보의 제공을 통해 고객과 은행이 보다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가교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려고 합니다.
■ 발자취
신동혁 회장은 국제감각이 뛰어난 금융인이다. 태어난 곳은 전라도 강진의 작은 마을이지만, 그가 은행원으로서 활동한 곳은 주로 국제금융시장이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촌놈`같지만 생각하는 것은 `국제적`이다. 요즘 흔히 하는 얘기로 `퓨전`이다. 시골스러움과 국제적인 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신 회장이 국제무대(?)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 71년 한일은행 도쿄지점부터 시작된다. 당시 직급은 대리. 과장급 이상이어야 갈 수 있는 해외지점을 신 대리는 간 것이다. 이후 신 회장은 탁월한 국제금융감각을 인정받아 중동의 바레인(83년), 홍콩(85년) 지점장으로 일한다. 결국 지점장을 마친 신 회장은 한일은행 국제부장으로 일한 뒤 상근이사, 은행장 직무대행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한다. .
신 회장의 이 같은 국제감각은 외환위기때 빛을 발해 99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과의 합병의 초석을 다졌다. 자신이 30년이상 봉직한 은행이었지만 신회장은 은행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합병을 결정했다. 결국 그의 노력은 외환위기 이후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금융시스템을 정상화시키는데 밑거름이 됐다.
합병을 마무리한 신 회장은 99년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은행으로 평가받는 한미은행장으로 또 자리를 옮긴다. 신 회장은 작년 11월 은행연합회 회장에 선출됨으로써 지난 36년간의 금융인으로써의 경력에 최고에 달했다. 이제 그의 마지막 꿈은 대한민국이 동북아의 금융허브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신 회장은 “21개 회원은행들이 모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이 동북아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도록 금융인으로서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약력
▲39년 전남 강진 출생
▲광주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64년 한미은행 입행
▲91년 한일은행 상무
▲98년 한일은행장 직무대행
▲99년 한미은행장
▲2002년 은행연합회장
■ 내가 본 신동혁 회장 - 박영호 우리은행 부행장
신동혁 회장하면 우선 숨쉬는 동상이라고 할까. 여하튼 과묵하기 그지없는 중후한 지도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선뜻 가까이 가서 대면하기가 꽤 조심스러운 언제나 짙은 카리스마가 배어나오는 분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의외로 소탈하고 정이 많은 분이라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된다.
신 회장이 러시아 출장시 동행했던 한 책임자의 이야기는 이런 신회장의 모습을 함축하고 있다. 러시아의 모 유력은행 총재와 면담약속이 있어 수행하던 그는 큰 실수를 했다고 한다. 바로 그 러시아은행 총재에게 줄 선물을 호텔에 두고 온 것이다.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책임자는 몹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신회장에게 이 일을 사실대로 보고했다. 그러나 신회장은 조용히 동행한 책임자에게 예비물품은 없느냐고 물은 후 그냥 만나러 들어가자고 말씀하시고 책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 회장이 한일은행에서 국제담당 임원으로 일하던 시절 해외점포를 순방할 때마다 직원들에게 물은 것이 있다. 바로 직원과 가족들의 여가생활 및 건강관리에 관한 것이다. 신 회장은 조용하면서도 항상 직원들의 안부를 챙길 정도로 자상하다.
신 회장과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들은 신 회장을 탁월한 리더십과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분이라는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이는 신 회장이 업무를 처리하는데 있어 선이 굵으면서도 치밀해 늘 명쾌한 결론을 내기 때문이다. 신 회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면 아무리 분량이 많은 것이라도 `쓱` 한 번 훑어본 후 단번에 문제점을 지적해 낼 때에는 등에서 땀이 날 정도였다.
신 회장은 은행생활의 상당기간을 해외지점 및 국제업무분야에서 보냈다 이 때문에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고 의전에서도 뛰어난 감각과 매너가 돋보인다. 국내업무에 있어서도 크고 작은 일들을 주도면밀하게 처리하는 등 적잖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라는 거대한 시중은행 합병의 초석을 다졌다. 신 회장은 우리 은행원들에게 언제나 큰 스승 같은 분으로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정리=조의준기자 joyju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