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공기서 산업원료 생산…“공기 연금술사”/에너지기술연 조순행 박사

◎수상자 연구세계/1억분의 1㎝구멍 「분자 체」 이용/공기속 질소·이산화탄소 등 분리/에너지절약·환경보호 “일석삼조”/최근 일산화탄소 재활용 도전도한국과학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제정하고 과학기술처가 후원한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제 4회 수상자로 조순행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선정됐다. 조박사는 「이산화탄소·산소·질소 등의 기체를 흡착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의 연구활동과 연구세계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조순행 박사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공기의 요정 에리얼의 화신이다. 그는 오염된 공기 속에서 순수를 추구한다. 그는 공기 속에서 질소·산소·수소·이산화탄소 등의 기체를 99% 이상의 높은 순도로 뽑아낸다. 조박사의 눈에는 공기 분자들이 보이는 모양이다. 그는 공기를 걸러내기 위해 구멍이 아주 작은 체(Shieve)를 사용한다. 그는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체로 가는 모래와 굵은 모래를 차례차례 분리하듯 공기를 걸러낸다. 조박사가 사용하는 분자 체(Molecular Shieve)는 구멍의 크기가 3∼6□(옹스트롬·1□은 1억분의 1㎝)이다. 그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는 눈을 가진 그물로 저인망을 만들어 필요로 하는 공기 분자들을 포획(?)하고 있는 것이다. 분자 체는 그물처럼 생긴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작은 알갱이로 되어 있다. 제올라이트·활성탄·활성 알루미나·실리카젤 등 □차원의 기공을 가진 작은 알갱이(흡착제)들이 바로 분자 체다. 모래를 체질할 때 굵기에 따라 눈의 크기가 다른 체를 사용하듯 공기를 걸러내는 분자 체도 대상으로 하는 공기 분자의 크기에 따라 기공의 크기가 달라진다. 또 흡착제의 흡착력과 흡착속도에 따라 흡착되는 공기의 종류가 달라진다. 흡착제가 들어있는 용기 속에 높은 압력으로 공기를 불어넣으면 기공보다 큰 공기 분자들은 빠져나가고 기공보다 작은 분자들이 기공 속에 들어앉는다. 이 때 진공으로 기공 속에 있는 공기들을 빨아들이면 매우 순수한 공기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압력변동흡착분리(PSA·Pressure Swing Adsorption) 기술이다. 조박사가 공기를 분리 정제하는데 그의 연구 인생을 걸게 된 것은 자취 시절에 맡았던 연탄가스(일산화탄소) 때문이다. 지난 60년대 중반 경기고와 서울대에 다니던 시절, 가난한 자취 생활로 연탄가스를 하도 많이 맡아 이제는 거의 면역된 수준이다. 같이 자던 동생이 고목나무처럼 쓰러져도 조박사는 끄덕도 없었다고 한다. 지난 16년간 질소·산소·이산화탄소 등의 공기를 잇달아 정복한 조박사는 최근 일산화탄소(CO)에게 도전장을 냈다. 연탄이 사라져가는 지금 연탄가스에 사무친 원한(?)도 거의 잊을만 한데 그의 원한은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일까. 조박사는 연탄가스에 대한 원한을 복수가 아니라 계몽으로 해결할 생각이다. 그가 최근 착수한 연구는 「못된」 일산화탄소를 뽑아내어 「착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곧 제철소나 석유화학(나프타)공장에서 나오는 배기가스에서 일산화탄소를 분리·정제하여 초산·개미산·폴리우레탄 등 정밀화학제품의 원료로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공기를 다루는 조박사에게 「가스 누출」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 연구 특성상 유독 가스를 많이 취급하기 때문에 「가스 누출」은 치명적이다. 따라서 조박사의 완벽주의는 「물샐 틈 없는」이 아니라 「공기 샐 틈 없는」 수준이다.<허두영 기자> ◎인터뷰/“불가능한 과제 해결방법 찾으려 잠자리에서도 집요하게 모색” 『어떤 일이든지 상식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일에 매달리면 방법이 생깁니다. 그것은 개인의 능력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그 일에 매달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조순행 박사는 지난해 12월 삼성정밀화학 울산공장에 설치한 이산화탄소 흡착분리장치가 얼어터진 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한겨울에도 좀처럼 얼음이 얼지 않는 울산에서 자신이 개발한 흡착분리장치를 방송에 소개하는 날을 하루 앞두고 냉각수가 얼어터져 장치를 작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조박사는 온갖 난방장치를 동원하여 배관을 녹이고 새 파이프로 이어붙여 하루만에 정상 가동시키는데 성공했다. 주변에 있던 삼성정밀화학과 방송 관계자들도 놀랐지만 가장 놀란 것은 조박사 자신이다. 스스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하니까 해결되더라는 놀라움이다. 한번 맡으면 자면서도 생각하는 것이 조박사의 근성이다. 지난 80년대말 프랑스 국립 로렌스공대(INPL)에서 유학할 때 산·학 공동 연구를 수행하면서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과제를 해결한 것도 그의 집요한 추진력 덕택이다. 『당시 연구실에서는 물론 집에서, 또 자면서까지 그 과제에 대한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잠결에서 깨어나 문득 떠오른 생각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추진력으로 조박사는 프랑스 유학 시절만해도 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국제 학술지에 13편, 국내 잡지에 16편, 국제 학술발표회에 17편, 국내 학술발표회에 21편을 각각 발표했다. 특허는 국내 10건(출원·등록), 미국 1건(등록), 일본 3건(출원) 등이 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 조박사가 지난 89년 구입한 「엑셀」을 8년째 타고 다니는 것도 이런 관심의 다른 표현이다. 10년은 채울 예정이다. 예산 출신의 조박사가 청양 출신의 아내와 결혼한 뒤 가장 멀리 간 곳이 수안보다. 그것도 5년이나 됐다. 어떻게 살았기에 충청도 출신 부부가 신혼여행을 제외하고 아직 충청도를 벗어나 보지 못했을까. 장소는 정하지 못했지만 이번 여름 휴가에 수안보보다 멀리 가는게 조박사 부부의 소박한 꿈이다. ◎수상업적/CO₂ 흡착·고순도 질소 제조 등/공업용 원료로 상업화 성공/미·일 등서 특허출원 “세계적 주목” 조순행 박사의 연구분야는 흡착제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질소·산소·수소·아르곤 등의 공기를 걸러내는 작업이다. 조박사는 공기를 분리하는 압력변동흡착분리(PSA·Pressure Swing Adsorption) 공정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이산화탄소(CO₂)의 흡착분리공정기술:산업체 배기가스나 자동차 매연 등에서 온실효과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만 분리 회수해 산업용 원료로 재활용하는 기술. 제철소처럼 배기가스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곳은 1단계로, 화력발전소처럼 농도가 낮은 곳은 2단계로 PSA 공정을 거쳐 순도 99%의 이산화탄소를 뽑아낼 수 있다.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보다 생산성이 2∼3배 이상 높다. 조박사는 지난해 삼성정밀화학의 열병합발전소에 이산화탄소를 회수하는 시험 공장을 설치하고 현재 여기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삼성정밀화학·대한정밀화학 등에 공업용 원료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순도 질소제조장치:공기 중에서 수분과 이산화탄소를 흡착 제거한 뒤 제올라이트에 질소를 흡착시키고, 이를 진공 펌프로 빨아들여 순도 99.99%의 질소를 얻는 방법. 조박사는 지난해 이 기술을 대성산소(주)에 이전하여 상업화에 성공하고 고니정밀에 설치했다. 액화질소가스를 사용하는 방법에 비해 비용이 적고 간편하며, 선진국의 기술에 비해 회수율 등 효율면에서 선진국의 기술보다 30% 이상 높아 앞으로 반도체·전자·타이어·유리·맥주·화학 등의 산업에 널리 활용될 수 있다. ◇산소농축장치:공기 중에서 제올라이트 흡착제에 질소를 흡착시킨 뒤 흡착이 안되고 남아있는 산소를 90∼93%로 농축시키는 기술. 조박사는 지난 90년 한국에너지산업㈜에 기술을 이전, 상용 제품을 생산해 중소규모 산소 사용처에 공급하고 있다. 지난 95년에는 이 장치의 설계운전기술을 개선하기 위해 설계운전 소프트웨어를 개발, 공급했다. ◇아르곤(Ar)과 수소 회수공정기술:연료로 사용한뒤 버리는 암모니아 퍼지가스에서 비싼 아르곤과 수소를 동시에 고순도로 회수하는 흡착분리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지난 94년 삼성정밀화학 울산 암모니아 공장에 암모니아 퍼지가스를 처리할 수 있는 파일럿 플랜트를 설치하고 시험을 끝냈다. 현재 미국에서 특허를 획득했고 일본과 한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폐가스를 다시 자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기술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비슷한 혼합가스의 분리공정에도 활용할 수 있다. ◇농축 산소와 분리막을 이용한 폐수처리기술:산소와 분리막을 이용하여, 주정·피혁·수지 등의 공장에서 나오는 분해하기 어려운 고농도의 산업 폐수를 정화하고 이를 중수로 재활용할 수 있게 했다. 활성 슬러지가 들어있는 밀폐 용기에 폐수를 담은 뒤 산소를 공급하여 페수를 처리하고, 슬러지는 여과막으로 분리하여 순환시키고 여과막을 통과한 중수를 산업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이소부탄 흡착분리정제공정:공장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이소부탄 혼합물에서 불순물인 올레핀과 파라핀을 제거한 뒤 이소부탄을 99.99% 이상의 고순도로 농축 회수하는 흡착분리공정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조박사는 현재 실용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는 물론 관련 플랜트 수출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흡착식 냉동기:산업체에서 나오는 저온 폐열(약 80℃)을 활용해 냉수를 얻는 기술로 파일럿 단계의 연구를 끝내고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압축기 대신 흡착제를 이용해 수분을 모으고 이를 증발기에서 증발시켜 물을 얻는다. 사용한 흡착제는 80℃의 산업 폐열을 이용해 다시 흡착공정에 투입한다. 프레온 가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고 폐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다.<김상연 기자> ◎심사평/고려대 진정일 교수/개발기술 일보다 효율 2∼3배 높아 온난화방지 새장 조순행 박사가 개발한 이산화탄소 흡착분리공정기술은 현재 세계 최고인 일본보다 효율이 2∼3배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또 단순한 학술 논문이 아니라 기업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생산기술로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는 물론 화학원료까지 조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갖고 있어 이 기술은 한국이 국제기후변화협약에 주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심사위원장:진정일 고려대 교수 ◇심사위원:장성도 이수화학 고문·강민호 한국통신 해외사업본부장·김진동 서울경제신문 주필·명효철 고등과학원 부원장·박원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배무 이대 교수·변광호 생명공학연구소 소장·손병기 경북대 교수·손재익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선임부장·이대운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 소장·이리형 한양대 부총장·전의진 과기처 연구기획조정관·정명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채영복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사무총장

관련기사



김상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