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피플 인 이슈]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

산유-소비국 '석유회담' 주도 "입지 과시"<br>서방 국가와 유대속 견제·균형 이루며 실리 추구<br>오일머니 활용 경제개발 주도, 사회적 불안 해소<br>왕손만 6,000명… 왕위계승과정 순조로울지 관심




[피플 인 이슈]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 산유-소비국 '석유회담' 주도 "입지 과시"서방 국가와 유대속 견제·균형 이루며 실리 추구오일머니 활용 경제개발 주도, 사회적 불안 해소왕손만 6,000명… 왕위계승과정 순조로울지 관심 김희원기자 heewk@sed.co.kr 지난 22일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구도시 제다에서는 전 세계 산유국 및 소비국에서 온 각료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유가 대책을 논의하는 회담이 열렸다. 반서방 산유국과 소비국, 친서방 산유국 등 35개국 대표들이 모인 유래 없는 이 회의는 한 사람의 ‘입김’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4분의1을 점유하는 사우디의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84) 국왕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를 육박하며 치솟는 가운데 산유국과 중동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인 압둘라 국왕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회의는 사우디만 하루 생산량을 20만 배럴 증산하는 것으로 그치고, 친서방국가와 반서방국가 사이의 극명한 이견차를 드러냈지만, 압둘라 국왕이 석유 문제를 국제적 차원에서 토론에 부쳤다는데서 그 의의를 갖는다. 압둘라 국왕의 사우디는 친 서방 기조를 유지하면서 이슬람 우선주의와 보수적인 아랍 민족주의를 동시에 표방해 왔다. 1932년 서방의 지원 속에 독립한 사우디는 태생적으로 친서방, 친미 성향을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미국의 영향력을 극복해가며 그 자신과 왕가 및 사우디의 입지 강화에 나서는 유연한 실리 정책을 확인케 해준다. 그는 서방 국가들과 정치적, 경제적 유대를 맺으면서도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다. 실례로 지난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그는 “원유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며 부시 대통령의 증산 요구를 거절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사건을 ‘부시의 굴욕외교’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한달 여 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고유가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잘 알고 있다”며 증산을 언급했다. 기실, 유가 안정은 사우디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 경제가 불안하면 달러 연동 페그제를 실시하고 있는 사우디의 경제 역시 불안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국왕은 1924년 사우디의 초대 국왕인 압둘 아지즈의 13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제5대 국왕인 이복 형 파드에 이어 지난 2005년에 제6대 사우디 국왕에 올랐다. 하지만 전 파드 국왕이 1995년 뇌졸증으로 쓰러진 이후부터 왕세자 신분으로 통치권을 행사해 실질적인 통치 기간은 십여 년을 헤아린다. 청렴한 성품 탓에 국민들의 신망 역시 두터운 편이다. 지난 2005년 압둘라 국왕이 공식 즉위 뒤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도 중국이었다. 중국은 미국에 이은 제2의 원유 소비국이자 향후 중동 원유 수입 분을 더 늘려갈 것이라 예상되는 나라다. 압둘라 국왕의 행보는 이슬람권의 주도권을 노리는 이란의 움직임과 비견된다. 이슬람 양대 산맥인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와 이란의 지도자는 우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교체됐다. 압둘라 국왕이 실리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 이란은 초강경 일변도를 걷고 있다. 사우디가 넘쳐나는 오일 머니로 각종 경제 개발 계획을 주도해 가고 있는 사이 이란은 핵개발을 둘러싸고 서구권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사우디 왕가의 곤경은 대외적 요인보다는 내부적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는 아직도 전제 왕권을 유지하는 나라다. ‘사우디’라는 국명 자체가 알 사우드 왕가에서 나왔다. 국왕은 왕이자 종교 수장으로 입법ㆍ사법ㆍ행정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왕을 견제할 정당이나 의회, 헌법, 성문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부도 왕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다. 국왕 자신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이며 사우디 부의 원천인 석유 사업은 대다수 국유화된 상태로 왕족들에 의해 움직여진다. 이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며 사회적 긴장감을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같은 석유 부국인 쿠웨이트가 두 왕가가 번갈아 집권하는 가운데 ‘요람에서 무덤까지’에 이르는 복지 국가를 창출한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압둘라 국왕은 밀려드는 오일 달러로 각종 경제 개발을 주도, 일자리를 창출하며 사회 긴장감 해소에 나서고 있다. 사우디는 4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산업도시인 수다이르 산업도시를 비롯, 266억달러 규모의 킹 압둘라 경제도시 프로젝트 등으로 경기 부양을 추진 중이다. 최근 5년간 늘어난 정부 지출은 인적 자원 발전에 최우선적으로 투입, 정부 전체 지출의 36%를 이 분야에 쓰고 있다. 압둘라 국왕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거리를 두며 서방과의 화해를 도모하고 있다. 이는 물론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왕가를 보호하고 전 국왕의 직계 형제들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지키는 데도 유효한 전략이다. 압둘라 국왕은 사우디 국왕으로서는 최초로 바티칸에 위치한 교황청을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만났다. 이슬람 이외 종교의 공공 전시를 금지하고 타 종교 성직자의 입국을 금하는 사우디로서는 획기적인 정책 변화다. 또 유대교, 기독교인들과 사우디에서 만나 종교간 대화를 열자는 제의도 내놓았다. 이밖에 외신은 젊은이들을 극단주의로 물들게 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이맘(이슬람 성직자) 4만 명에게 압둘라 국왕이 재교육을 명했다는 소식도 전하고 있다. 여성들이 운전 면허증을 소유할 수 없고 허가 없이는 자유로이 여행도 할 수 없지만 최근 여성 전용 호텔을 개관했다. 남녀 동석 하에 관람하는 첫 클래식 콘서트도 최근 열었다. 이 같은 움직임으로 사회적 괴리감이 진정되더라도 난제는 여전하다. 사우디는 형제 세습 전통을 이어온 나라로 첫 국왕의 아들 세대가 이미 모두 고령이어서 손자 세대에서 왕을 찾아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압둘라 국왕은 왕위 계승을 최종 승인하는 왕족회의인 ‘충성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왕손만 6,000명으로 헤아려지는 이 나라에서 견고한 왕권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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