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너무나 인간적인 회장 최종현'

■ 브리핑이 맘에 안들면 손톱을 깎아라정원교 지음/인능원 펴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재벌에 대한 질시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생전은 물론, 사후까지 향기 나는 이름을 남기기란 쉽지 않다. 고(故) 최종현 전SK그룹 회장. 그는 자신의 사후에 무덤을 쓰지 말고 화장을 하라는 유언 남겨,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세상의 안락도 모자라 저승까지 그 영화를 가져가려는 게 인간의 욕심이고, 그래서 명당자리도 찾고 화려한 봉분도 꾸미는 것인데, 그렇게 돈 많은 재벌이 그 것을 깨다니, 세상은 한편 놀라고 한편 그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브리핑이 맘에 안들면 손톱을 깎아라'를 읽으면 최종현 전회장의 선택이 참으로 그 다운 것임을 알게 된다. 1980년대초 3년간 비서실장으로 최 회장의 측근에서 일했던 정원교 씨는 책에서 당시의 수많은 일화들을 통해 최 전회장의 사람 됨됨이를 가감없이 독자에게 전달한다. 책 제목도 평소 브리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최 회장이 불필요하게 브리핑이 길어지면 슬쩍 손톱을 깎던 모습에서 따왔다. 이처럼 허례허식이라면 질색이었으니, 사후의 화려한 무덤이 그에게 탐탁했을 리 없다. 저자에 따르면 최 전회장은 꾸밈없는 사람이다. 비서실 초년 때 이런 일이 있었단다.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저자를 부르던 호칭은 "촌놈". 이에 못마땅했던 저자에게 '기회'(?)가 왔다. 출장 길에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구멍이 난 것. 운전기사가 바퀴를 갈아끼우고 있는데 최 전회장이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몸을 스칠듯이 차가 씽씽 지나가는데도 말이다. 아찔해진 저자는 얼른 다가가 회장의 어깨를 건드렸다. "자식이 사람 치고 그래" 회장은 발끈했다. '촌놈' 소리의 앙금이 남았던 탓인지 힘이 좀 들어간 것. 멀쭘히 "위험해서~"했더니, 최 전회장은 "알았어, 이 촌놈아!". 촌놈 소리 한 번 더 들었지만 정감이 전해왔단다. 그리고 그 후론 '촌놈'소리가 크게 줄었다고. 여느 재계 총수에 대한 평전에 비해 이 책은 상당히 담백한 편이다. 찬양 일색이 아니라는 얘기다. 최 전회장의 사업적인 업적도 소개하고 그의 인간미도 추켜세우지만, 그 역시 약점이 많고 때론 주위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내는 인물이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신입사원은 물론이고 사장이나 부회장에게까지 '유(you)'라고 스스럼없이 불렀던 회장. 그 마음 속의 따뜻함이 바로 '인간 위주의 경영'의 원천이었음을 책은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힘 있다고 돈 있다고 힘 없고 돈 없는 이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바로 고(故) 최종현 전SK그룹 회장이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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