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안 좋기는 안 좋은가 보다. 그나마 형편이 괜찮은 사람이 찾는 백화점 추석경기도 영 신통치 않으니 말이다. 백화점에서 판매된 추석선물세트 내용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국내 최대 백화점인 롯데백화점에서 추석을 맞아 판매한 선물세트 중 판매신장률이 가장 높은 상품은 햄 선물세트다. 단체주문이 늘어나면서 판매량이 지난해 이맘때쯤보다 60% 이상 늘었단다. 햄 선물세트도 가격이 3만원부터 10만원대까지 다양하지만 가장 많이 팔린 것은 5만원대였다.
반면 지난해 판매신장률 1위였던 와인은 올해에는 아예 신장률 ‘톱10’에도 끼지 못했다. 와인 역시 여전히 선물세트로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20만~30만원대를 찾는 고객이 줄어들면서 매출증가율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정확한 조사는 아니지만 백화점의 선물세트 구매단가도 뚝 떨어져 지난해에는 개당 15만~20만원에서 올해에는 5만~10만원대로 낮아졌다고 한다.
백화점이 이러니 재래시장이나 대형 마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얼마나 역신장할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제는 하루 이틀 뒤면 어쩔 수 없이 지난해보다 가볍고 얇아진 선물세트를 들고 고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어쩌면 선물세트라도 들고 가는 게 다행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추석이 올해뿐이라면 참을 수 있겠다. 하지만 벌써 몇 년째다. 참여정부 내내 경기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몇 년 동안 매년 이맘때면 비슷비슷한 담화문이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지난 2003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각 방송사의 라디오를 통해 밝힌 귀향 메시지에서 “우리 경제는 국민과 정부ㆍ근로자ㆍ기업인이 원칙을 지키고 서로 마음을 모으면 훨씬 빨리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부터 모든 역량을 경제회복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1년 뒤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추석담화문을 통해 “올해 추석은 어렵겠지만 내년 추석에는 반드시 웃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추석경기가 좋아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백화점 등에 잠시 반짝 경기가 있었을 뿐 경기와 소비침체는 참여정부 기간 동안 줄곧 골칫거리였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였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정권이 바뀐 만큼 이전 얘기하고는 관계가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국민 입장에서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더구나 경제를 살린다기에 다른 것 무시하고 찍어준 정권이다.
물론 아직까지 운도 따르지 않았다. 전 정권 때에는 세계경제가 호황이었고 그 덕에 주가는 급등했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소비가 침체돼도 외국인의 매수세가 이어지고 펀드에 자금이 몰리면서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래서 주식시장은 항상 전 정권의 자랑거리였다.
지금은 그 반대다. 주식시장이 뒤흔들리고 취약한 경제는 더 나빠졌다. 외국인도 연일 주식을 내다팔고 있다. 자랑거리가 마땅치 않다. 세계경제의 침체를 탓할 수도 있지만 이를 핑계 삼기에는 실망감을 준 게 너무 많다. 지난해 추석 때에는 55%에 달하던 대통령 후보 시절의 지지율이 6개월여 만에 급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대통령은 취임 6개월을 자평하면서 “국민들이 하고 계신 평가와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그 평가가 어떤 것이고 민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뜻일 게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내년 추석에는 더 많은 선물세트를 들고 웃으면서 고향으로 갈 수 있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