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건축물 답사는 시대적 공간을 오감으로 느껴야 제 맛"

박희용 서울학연구소 수석연구원 16일 창덕궁 답사

고전 인문 아카데미 '역사 속 한국 건축' 마무리


“창덕궁은 우리 고유의 건축기술과 철학으로 지어진 첫 궁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05년 창건 당시에는 3칸의 작은 전각으로 된 왕의 별장이어서 중국의 궁궐 격식인 3문3조(三門三朝) 등을 갖춘 게 아니었어요. 이후에 정비를 하면서 중국의 격식을 따랐지만 처음에는 가장 한국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16일 서울시교육청 서대문도서관에서 열린 고전 인문 아카데미‘역사 속 한국건축’의 피날레를 장식한 창덕궁 답사에 나선 박희용 서울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돈화문(敦化門) 앞에서 창덕궁의 유래를 이같이 설명했다.

박 수석은 “우리의 궁궐들을 바라볼 때 모두 중국의 기본 양식을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며 “온돌과 마루 그리고 부엌이 한 지붕 아래에 있는 것이 가장 한국적인 건축의 특징인데 15~16세기부터 보편적으로 궁궐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창덕궁에서도 이같은 고유의 우리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면서 창덕궁을 건축학적 시선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강좌는 서울시교육청과 본지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SK텔레콤과 한국출판인회의가 후원하는 고전 인문학 강좌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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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수석은 건축에서 답사의 의미를 묻자 “시대적 공간을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라며 “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그 공간을 실제로 걸어보면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고 비가 올 때는 낙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체의 체험”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답사 안내는 정조가 설치한 규장각으로 이어졌다.“처음 규장각이 설치될 때는 창덕궁의 안쪽인 내전에 위치했어요. 이른바 정조가 왕권 강화에 필요한 인물들을 키우기 위해 내전에 마련한 것이지요. 내전이란 궁궐 중에서도 은밀한 공간인 탓에 출입하던 신하들이 난감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후 정조 5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는데 신하들의 잇따르는 상소에 못이기는 척 궁궐 앞쪽으로 옮겼지만 어느 정도 왕권이 확립되었다는 정조의 판단이 있었던 것이죠.”

이날 답사 일정은 돈화문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석교인 금천교를 지나 규장각과 인정전, 선정전, 희정전, 낙선재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답사에 참가한 설형태 씨는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법한 오래된 건축물에 불과했는데 서대문도서관에서 강의를 다 듣고 와서 직접 와서 보니 우리 건축물이 이렇게 과학적이고 깊은 뜻이 담겨있었구나 새삼 놀랍고 즐거운 체험”이라며 “우리 건축과 역사를 접목한 강의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 아이들이 이런 강의를 듣고 미래에는 우리 고유의 건축문화가 생활 공간 곳곳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2개 서울시교육청 도서관에서 열리는 이번 고인돌 강좌는 한국건축 외에도 한국고전, 고지도, 예술 속 고전읽기 등 풍성한 인문학강의가 열리고 있다. 신청은 무료이며, 세부 프로그램 내용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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