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중기 금융지원 양보다 질이다


'요즘은 중소기업이 대세'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중소기업들도 이 말에 동의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특히 국내외 각종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1순위 애로사항으로 꼽히는 자금조달 분야는 더욱 그렇다.

과거보다 중소기업대출과 보증 규모는 크게 늘었다. 연말연시와 명절을 앞두고 중소기업 자금난 완화를 위해 금융권이 '몇 조 원'을 지원한다는 언론보도도 이제는 익숙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기업의 금융접근성은 지난 5년간 20위권에서 100위권으로 밀려났다.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자금부족을 호소하고 있고 이에 대해 정부와 금융기관은 더 많은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신뢰 없는 중기-투자자 관계 여전


이러한 고비용ㆍ저효율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는 중소기업금융 가치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파트너십'과 '수요자 중심'의 가치가 우선 돼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가치들은 어떤 쓸모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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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벤처캐피털의 경우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면 극명하게 갈린다. 양국의 벤처캐피털을 모두 경험한 한 청년 사업가가 한국 벤처캐피털의 투자행태를 너무 나쁘게 평가해서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과도한 위험회피 성향은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이 개선할 점으로 지적된다. 최근 벤처캐피털 업계의 자정노력이 있긴 하지만 주식매매청구권을 통해 대표자의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등 기존의 비정상적 투자 관행들이 결국 중소벤처 기업인과 투자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관계가 이렇다 보니 기업인은 멘토로서 투자자의 조언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투자자 역시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보는 기업인에게 효과적인 경영자문을 하기 어려운 구조가 굳어져 왔다. 그 결과 '기업의 실패는 기업가의 실패가 아닌 투자자의 실패'로 보는 미국처럼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투자한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상생의 벤처생태계 조성은 어려웠다.

은행 대출도 최근 금융감독당국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존 '예ㆍ적금 꺾기'규제를 우회해 대출이 필요한 기업 대표와 그 가족 및 임직원들에게까지 보험, 카드, 예ㆍ적금을 불문하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신종 꺾기'가 등장해서 중소기업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한다. 이러한 투자와 대출 모두 상생을 위한 장기적 안목의 파트너십이 아쉬운 대목이다.

지역금융 활성화 등 상생대안 필요

요즘 금융권의 고객서비스 수준이 높아져서 금융기관 대응에 대한 중소기업의 부담이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금융기관의 문턱'은 쉽게 낮아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친절하긴 하지만 업무 절차상 기업인을 잠재적 채무면탈자로 대하는 듯한 금융기관과 잘못이 없는데도 은행 앞에서는 왠지 위축되는 중소기업인 모습에서 여전히 금융권과 중소기업은 '가깝지만 먼 당신'으로 느껴진다. 역지사지와 수요자 중심의 배려가 아쉽다.

금융 부분과 실물 부분은 상호 작용하면서 함께 발전해야 한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과 실물의 불균형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다. 그렇다고 해서 글로벌화ㆍ대형화ㆍ산업화를 추구하는 금융산업에 당장 모든 중소기업과 상생할 것을 주문하는 것도 무리한 요구다. 그런 면에서 수요자별 역할분담이 잘 돼 있는 독일의 금융시스템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도이체방크는 경쟁력 있는 상업은행으로서 글로벌 강소기업과 대기업의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지자체가 대주주인 스파르칸센은 지역 공공은행으로서 소위 '관계금융'의 모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역금융과 협동조합금융의 활성화를 통해 산업형 금융모델과 공유가치형 금융모델을 병행하는 전략을 중소기업금융의 큰 방향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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